카즈베기 호텔에 투숙하여 이른 아침 창문을 열어보았습니다. 까마득한 언덕 위, 해발 2070m 고지에 고고하게 서있는 게르게티 삼위일체 성당(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면 볼수록 가슴에 잔잔한 감동이 가득 차오릅니다. 하얀 설산과 어우러진 성당의 모습이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있어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한걸음에 달려가 그 품에 안기고도 싶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마을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 오가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그런데 한 할머니가 나오셔서 도로 주변을 깨끗하게 빗질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새벽의 정적을 깨고 들리는 '사각사각..'하는 빗질소리에 한동안 빠져 있다가 카메라를 드는 순간에 집으로 들어가시더군요. 할머니가 빗질한 곳은 당신의 집앞 인도와 그 앞의 차도까지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입니다.







이제 산꼭대기의 게르게티 삼위일체 성당으로 올라갈 순서입니다. 호텔에서 다리를 건너자마자 지극히 평온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입가에 나즈막히 정지용 시인의 노랫말이 절로 흥얼거려졌습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성당이 있는 산꼭대기로 오르는 방법은 두가지입니다. 지프차를 대여해서 타고 오르는 방법과 직접 걸어오르는 방법입니다. 우리들은 지프팀과 등산팀, 두 팀으로 나누어 올랐습니다.  







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온통 꽃밭입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발걸음이 아까울 지경입니다. 흐드러졌다는 것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인가 봅니다. 







모든 것이 꿈에 그리던 광경입니다. 꽃길 넘어 하얀 설산이 이어지는 목가적인 길을 걸으면서 힘든줄도 몰랐습니다. 그저 콧노래만 흥얼거리게 될 뿐.







하지만 꽃길이 끝나고 나자 가파른 경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산속에 살포시 자리잡은 카즈베기 마을이  성냥곽만큼 작아진 걸로 보아 꽤 올라온 것 같은데 아직도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도 지프를 타고 올라오는 팀보다 앞서고자 힘을 내봅니다.




 


드디어 게르게티 삼위일체 성당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험한 길을 오르면서 도대체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성당을 지어놓은건지 의아할 따름이었습니다. 이건 아예 성당에 찾아오지 말라는 뜻 같기도 하고....

하지만 성당의 모습이 가까워지면서 알 수 없는 포근함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그래, 저곳에만 도달하면 편히 쉴 수 있을거야...'  그랬습니다. 게르게티 삼위일체 성당은 천국이었습니다. 오르기 힘든... 하지만 올라야만 하는.







드디어 산꼭대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제일 먼저 우리들을 반겨준 것은 시원한 샘물이었습니다.







물을 한모금 들이키고서야 여유를 갖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았습니다. 그곳엔 너무나 감동적인 광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눈앞에 바짝 다가선 설산이 가슴을 탁 트이게 했습니다. 

멀리 막 도착한 지프팀이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드디어 게르게티 삼위일체 성당에 다다랐습니다. 소박하지만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흡인력이 있는 곳입니다.







이 아름다운 성당이 처음 건립된 것은 14세기의 일입니다. 누가, 왜 이곳에 성당을 지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워낙 험한 곳에 숨어 있는 곳이다보니 전란이 있을 때마다 트빌리시와 므츠헤타 등의 종교적 보물들을 이쪽으로 옮겨와 숨겨 놓았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루지야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지켜준 성스러운 성당으로 인식하여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성당 또한 소비에트 시절에 박해를 받았던 기록이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치 않았던 소련은 이 성당을 중심으로 한 그루지야인들의 신앙이 곧바로 민족의식의 결집으로 표출될 것을 우려했을 것입니다. 







결국 소련은 이 성스러운 성당을 관광지로 개발할 생각을 합니다. 카즈베기부터 이곳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1988년의 일입니다.  하지만 성지를 관광지화 하는데 대하여 현지인들의 극렬한 저항이 있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만일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왔다면 이 벅찬 감동은 반감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데 반대하지 않습니다. 나이든 노인들이나 장애우들도 산에 올라갈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곳만은 케이블카가 있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힘들게 걸어서, 또는 지프를 타고 올라와 눈앞에 맞닥트리는 광경, 그 벅찬 감동을 훼손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 일정은 염두에도 없었습니다. 성당에 뒤편에 자리 잡고 앉아 하염없이 바람맞이를 하고 있는 일행들을 재촉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눈이 한가득 쌓이고 차가운 칼바람이 부는 날, 홀로 이 산정으로 올라오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길고 긴 겨울에도 삼위일체 성당은 언제나 이 자리에서 힘들고 지친 영혼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성당 앞은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 지프차들의 바퀴자국이 어지럽게 그어져 있습니다. 그래도 흉하지 않습니다. 성당과 세속을 이어주는 길이니까요.







해발 5033m의 코카서스 산맥 최고봉인 카즈베기 산이 정면에 보입니다. 그 앞의 초원은 우리나라 덕유산의 중봉 아래 덕유평전을 연상시킵니다.







하산에 앞서 미련이 남아 다시 한번 뒤돌아보았습니다. 보고 또 보아도 가슴 가득 감동이 밀려옵니다. 삶에 지치고 힘겨운 사람들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듯한 성당의 자태 때문입니다. 












한참을 바라보고, 같은 곳에서 또 사진에 담아보고....







그래도 또 보고싶어집니다. 차마 발걸음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서는 맑고 화창해도 좋고, 비바람이 불어도 좋고, 칼바람이 사정없이 온몸을 때려도, 그래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코카서스의 최고봉인 카즈베기 산을 올려다봅니다.






















오랜 시간을 감동속에서 보냈습니다. 이제 하산할 시간입니다. 러시아제 지프차를 타고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순간을 간직하고자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