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 그루지야에서 스탈린을 만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고향인 그루지야의 고리라는 곳에서 입니다. 굳이 들르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어차피 지나가는 길이라 스탈린 박물관을 가볍게 돌아 보았습니다. 






이오시프리오노(Iosif Vissarionovich), 이것이 스탈린의 본명입니다. 스탈린은 '무쇠같은 사나이'라는 뜻의 별명입니다. 그에게 붙은 무쇠같은 사나이라는 별명은 지하 조직 활동을 하던 청년시절에  체포 7회, 유배형 6회, 탈출 5회 등 고난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탈린 박물관은 규모는 작았지만 꽤 근사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열주가 늘어선 아치형의 출입구부터가 제법 웅장해 보였습니다.  







박물관 내부입니다. 중앙홀에는 스탈린에 관한 사진과 보도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내를 하는 아가씨의 어투가 조금 이상했습니다. 스탈린을 이야기하면서 어딘지 빈정대는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내친 김에 넌지시 물어보았습니다. 스탈린이 이 마을 출신인게 자랑스럽냐고요. 그녀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고리에서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아요'  

스탈린은 그루지야 출신이라는 점이 하나의 컴플렉스였나 봅니다. 혁명 동지들 대부분이 지식인들이었으니 촌뜨기 스탈린으로서는 그럴만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스탈린은 고리에 대하여 더욱 혹독한 정책을 폈다고 합니다. 일종의 역차별인 셈이죠. 게다가 혹독한 소비에트 시절을 겪은 사람들 또한 스탈린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박물관을 운영하는지... 아마도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일단 문을 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탈린이 레닌과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스탈린은 이 사진을 들고 다니며 레닌이 자신을 후계자로 인정했다고 선전을 했습니다. 조직의 대가였던 그는 이런 소문을 퍼트리는 용의주도함을 보인 끝에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은 사실 소련이었습니다. 독일군을 막아낸 것도 소련군이었고 독일군을 압박하여 베를린으로 제일 먼저 진격한 것도 소련이었습니다. 그 댓가로 2,00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젊은이들을 희생시켰습니다. 이와 관련된 홍보관입니다.







스탈린의 데드마스크입니다. 그가 죽자마자 원형을 뜬 것으로 이 박물관에서는 가장 중요한 자료입니다.







스탈린의 집무실을 그대로 옮겨 았습니다. 그의 영원한 친구인 중국 공산당이 선물한 만수무강이라고 쓴 깃발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스탈린의 침소입니다. 소박하고 털털한 성격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저런 침대에서 잤을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이 건물이 스탈린이 태어난 생가입니다. 이 건물의 지하에서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 곳에서는 4살때까지만  살았다고 하는데, 이후부터는 워낙 많은 곳을 옮겨 다녔기 때문에 그가 살던 집이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 집이 스탈린이 살았던 유일한 집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박물관 밖으로 나오니 스탈린이 타고 다니던 전용열차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비행기는 못타고 기차만 타고 다녔다는데.... 북한도 그렇고, 독재자는 고소공포증을 가진 사람이 많은 모양입니다. 아니면 지은 죄가 많아 테러 위협에  시달리다보니 경호에 편리한 기차를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달리는 기차안에서 스탈린이 회의를 하던 탁자입니다.







박물관 밖에는 스탈린 동상도 세워져 있습니다. 원래 스탈린 동상은 마을 중심 광장에 엄청난 크기로 있었는데, 그루지야 독립 이후에 끌어내렸다고 합니다. 결국 이 동상이 마을에서 가장 큰 스탈린 상이 되었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