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서스 3국 중 마지막 방문지인 아르메니아로 넘어왔습니다. 아르메니아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역사를 지닌, 그리고 아직도 가장 불행한 나라 중 하나일 것입니다. 역사상 이름 꽤나 있던 제국 중 아르메니아를 짓밟지 않은 제국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아는 그들 고유의 문자와 종교, 풍속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대단한 저력을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먼저 아르메니아의 문화를 파악하기 위해 아흐파트 수도원을 찾아갔습니다. 수도원 앞마당에 있는 무덤입니다. 묘하게도 우리나라 사찰의 부도나 공덕비 같은 형태의 작은 탑이 서있어서 놀라웠습니다. 이 곳에 묻힌 사람의 공덕을 기리는 탑입니다.  







아흐파트 수도원은 9세기에 건립된 후 12세기에는 아랍의 셀주크가, 그리고 13세기에는 몽골이 침입하여 파괴했던 역사가 있는 건물입니다. 하지만 파괴가 일어나면 곧바로 재건축하고 보수를 시행하여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전후복구사업으로 제일 먼저 시행한  것이 수도원 재건이었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수도원 재건에 최우선 순위를 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의 수도원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수도원에서 신학이 연구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아 언어가 연구되고 교육되어졌으며, 문학, 예술, 의학까지도 전승되었습니다. 아르메니아의 수도원은 일종의 종합대학교와 같은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도톰하게 흙을 쌓아올린 이곳이 궁금할 것입니다. 저 흙더미 아래는 일종의 서고입니다. 양피지에 기록된 아르메니아의 기록물을 항아리에 담아 땅에 묻어두었는데, 습도와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시키기 위해 외부를 흙으로 덮어 놓은 것입니다.   







아르메니아 언어는 5세기에 체계회돠어 독특한 알파벳을 갖고 있는데, 현재도 그 시대의 알파벳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잦은 외란 속에서도 그들의 고유문자를 확실하게 지켜온 것입니다. 실크로드 교역 당시에는 각 국에서 온 대상들의 공용어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UNESCO에서도 이 점을 높이 평가하여 현재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수도원의 메인 예배당에 들어서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긴장감에 절로 옷깃이 여미어졌습니다. 아무런 장식도 없었습니다. 텅 빈 공간, 그저 육중한 돌벽과 빛만 존재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서유럽의 유명하다는 대성당은 거의 다 돌아 보았지만 이보다 더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는 없었습니다.  넓은 내부가 텅 비어 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세속적인 것들이 끼어들 공간은 없어보였습니다. 







수도원 곳곳에는 십자가 조각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르메니아만의 독특한 양식입니다. 수도사들이 하나의 수행방법으로 돌에 이 십자가를 새겼을 것입니다. 묵묵히 돌을 쪼고 있는 수도사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아르메니아 교회는 기독교의 3대축(로마 가톨릭, 동방정교회, 개신교)에 속하지 않고 그들만의 독특한 계보를 전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르메니아 사도회'라고 부릅니다. 제대 뒷면 벽에 12사도의 프레스코화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정면 창문... 그곳에서 들어오는 빛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절대자는 빛으로 존재하고 있음입니다. 







역사적, 종교적, 문화적 가치를 논외로 하더라도 아흐파트 수도원에 들어서면 그 고즈넉한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게 됩니다. 잡초가 자라고 있는 지붕도, 세월의 때가 붙어있는 벽면도 정적에 묻혀 있습니다.    







수도원의 종탑입니다. 본 건물과 분리되어 있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아르메니아의 지형도 참 재미있습니다. 당이 푹 꺼져서 평지를 이루고 있는가 하면 산꼭대기에도 넓은 평지가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확연히 구분됩니다. 







우리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윗마을로 올라와 또 하나의 수도원인 사나힌 수도원을 방문했습니다. 




 



아흐파트 수도원과 사나힌 수도원은 인접한 거리에 있을 뿐만 아니라 건축연대도 불과 10년 차이이고, 수도원의 기능도 비슷합니다. 따라서 이 두개의 수도원을 모두 방문하는 여행자는 거의 없습니다. 굳이 비슷한 배경을 지닌 사나힌 수도원을 재차 방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나힌 수도원은 다릅니다. 오히려 아흐파트 수도원보다 더 감동적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제 가도 한적한 사나힌 수도원은 쓸쓸하다 못해 스산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가슴 한켠을 시리게 만드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수도원 내부입니다. 예전에는 수많은 수도사들이 이 실내 공공집회장소에서 모임을 갖고 공동생활을 했겠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습니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사연을 안고 저 문으로 들어가 절절한 기도를 올렸을까요?  







벽면에 고대 아르메니아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적어도 700년 전에 새겨넣은 글입니다.












사나힌 수도원에서 만큼은 아무런 설명도 듣고 싶지 않았고, 아무런 것도 파헤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호젓하게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사색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빈 공간을 향하여  
아무런 말도 보탤 수가 없었습니다.












성당 뒤편은 이 마을 사람들의 공동묘지입니다. 묘비석에 사진을 새기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묘지를 둘러보다가 이 무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10살, 그리고 6살 된 형제가 같은 날 천국으로 간 듯 합니다. 도대체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나힌 수도원에 1시간 정도 머무는 동안 우리 일행 외에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수도원에 쌓여진 돌들은 천년의 세월을 침묵으로 버텨온 듯 합니다. 그 돌벽에 가만히 몸을 기대어 봤습니다. 의외로 따듯했습니다. 언제든 기대고 싶을 땐 기대어도 될 듯 싶습니다.







지붕 가득 자란 잡풀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파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수도원에 의지하여 살고 싶어하는 눈치입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