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을 벗어나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파간 사원과 게그하드 사원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군데군데 길이 무척이나 험했습니다. 원래 지반이 약한데다가 아직도 지각 변동이 진행중이어서 말끔한 포장도로도 이리저리 뒤틀리기 일쑤였습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벌판이 시원스레 펼쳐집니다. 자세히 보면 경작지는 아니고 목초지 같습니다만 완만히 이어지는 구릉이 왠지 정겹습니다.   







길가에 전망대가 있어 올라가 보았습니다. 다름 아닌 아라라트산 전망대입니다. 실제 아라라트산은 수도 예레반에서도 1시간 반 거리에 있습니다.







드디어 게그하드 사원에 도착했습니다. 다비드 가레자 수도원처럼 동굴사원의 형태입니다. 그러고보니 코카서스에는 유난히 동굴수도원이 많은 것 같습니다.    







13세기에 지어진 게그하드 사원은 아르메니아의 다른 수도원들에 비해 조금은 더 화려했습니다. 외진 곳에 뚝 떨어져 오직 수도에만 전념하던 다비드 가레자 수도원에 비해 이 사원은 정치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끊임없이 주변의 힘있는 가문이나 왕실로부터 기부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부금은 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물 증축이나 동굴사원 추가건립  등을 의미합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된 게그하드 사원의 진짜 매력은 그 건축법에 있습니다. 겉에서 보기엔 독립된 건물 같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뒷면의 바위를 깍아 만든 동굴성당이 계속 이어집니다.
이 메인 빌딩 안에 더 넓은 공간이 바위속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역시 출입문도 나름 화려하게 장식되었습니다. 문 위 양옆에는 기부한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상당히 세속적인 권력과 밀착되어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성당 내부의 천장 모습입니다. 돌을 쌓아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통바위를 깎아 아치도 만들고 기둥모양도 만들었습니다. 정말 경이로운 모습입니다.







동굴 내부에도 기부 가문의 문장이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독수리가 가문의 문장인데 양을 두발로 잡고 있으며, 이 가문이 얼마나 위대한지 사자 두마리를 잡아 매놓고 있습니다. 사원을 통해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모습입니다.   







아무리 정치권력에 밀착되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곳에서도 예의 아르메니아 십자가 조각은 곳곳에 나타납니다.







이런 형태의 성 십자가 조각은 아르메니아에서만 나타나는데, 아랫면은 지구 또는 땅을 상징하고 윗부분은 하늘나라를 상징합니다.  하늘나라와 땅을 십자가가 연결해주는 형태입니다.







다시 성당 내부의 모습입니다. 십자가 조각이 벽면 가득 채워져 있고 기둥에도 온통 십자가 조각입니다. 아르메니아 수도회와 십자가는 절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성당의 제대는 비교적 수수했습니다. 사원에 기부를 하며 위세를 부렸던 많은 가문들은 세월을 따라 사라져 갔지만 성당의 제대만큼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몽골, 페르시아, 소련 등등... 수많은 세력이 게그하드 사원을 찾아  귀찮게 했지만 사원 그 자체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있었습니다.







이제 게그하드 사원에서 멀지 않은 파간사원에 도착했습니다. 얼핏보기엔 그리스와 로마 신전을 연상시키는 건물이어서 약간 생뚱맞았습니다. 도대체 이 외진 계곡에 왜 이런 건물이 있을까요?







파간 사원은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에 이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숭배되던 태양신 미투라를 모시는 사원입니다. 건물의 규모로 보아 상당한 세력을 갖고 있던, 그리고 왕실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던 신앙이었던 듯 합니다.

파간사원이 로마양식을 띄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기원전 1세기에 이 지역을 통치하던 왕 트리다테스 1세가 로마에 가서 네로 황제를 접견하고 왔다고 합니다. 그리곤 네로 황제로부터 일련의 하사금을 받아와 이 사원을 건축했는데, 선진 문물을 보고 온 왕은 로마를 동경하여 로마양식으로 사원을 건립했다는 것입니다. 가능성이 있는 말입니다.    








여하튼 예전에는 미투라가 모셔져 있었을 사원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뜻하지 않게도 아르메니아의 전통피리인 '두둑'을 연주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두둑은 그 처연하고 구슬픈 음색으로 인해 단번에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두둑 연주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하겠지만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마지막 장면, 즉 주인공이 집으로 달려가 학살 당한 가족들을 목격하고는 밀밭사이를 방황하며 걷는 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연주입니다. 이날 파간사원에서 이 분이 했던 연주도 바로 그 곡이었습니다.








파간사원 주변에는 로마의 목욕탕과  똑같은 유적이 있었습니다. 한 때 이 사원 주변에 제법 큰 규모의 왕실 건물이 있었다는 방증입니다.







사원 안에서 두둑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인도에서 온듯한 아이가 너무나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참 귀여운 아이였습니다.







역시 파간 사원 주변의 건축물 흔적입니다. 결론적으로 기원을 전후하여 왕실이 이 지역에 큰 규모로 있었고, 그 왕실에서 미투라 신을 모시며 거대한 사원을 건축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줄을 지어 파간사원 안으로 들어가는 여행자들... 사원 안에서 구슬픈 두둑소리가 계속 흘러나오니 안들어 갈 수 없을 것입니다.







파간사원에서 내려다 본 가르니 계곡입니다. 테이블 마운틴과 같은 지형도 있고 제법 깊이도 있는 멋진 계곡이었습니다. 잠시 후 우리들이 트레킹을 하게 될 계곡입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