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도시 튀빙겐에서 나와 얼마 안가서 산꼭대기에 거대한 성이 나타났습니다. 호엔촐레른 성입니다. 독일의 수많은 고성중에서 호엔촐레른 만큼 위엄 넘치는 성은 없을 것입니다.
호엔촐레른 성을 올라가는 방법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걸어가는 것입니다. 밑에서 성입구까지는 걸어서 20여분 걸립니다. 시종 오르막이지만 숲길을 걷는 것이라 제법 상쾌합니다.
드디어 호엔촐레른 성에 도착했습니다.
보통 성들은 왕가의 소유지만 호엔촐레른은 그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호엔촐레른 성이 있는 지역은 슈바벤이라 불립니다. 호엔촐레른은 슈바벤 지역을 관장하던 영주의 성입니다. 왕이 아닌 영주의 성이 이렇게 웅장한 것은 유례가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호엔촐레른 가문의 세력이 막강했다는 뜻입니다.
마치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듯, 기사상이 넓은 슈바벤 지역을 굽어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호엔촐레른 가문은 11세기에 이 성을 지었습니다. 이 가문이 이 처럼 엄청난 성을 갖고 있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 가문에서 독일의 왕과 황제들을 다수 배출했기 때문입니다. 저 뾰족뾰족한 첨탑들은 마치 가문의 자부심을 말하는 듯 합니다.
1701년에는 이 가문에서 프로이센 왕이 처음 탄생, 유럽 최고의 명문가인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과 견줄 만한 세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대가 계몽전제군주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대왕으로 역시 호엔촐레른 가문입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당시의 3대 강국인 오스트리아, 프랑스, 러시아를 맞아 때론 전쟁으로, 때론 외교로 독일을 강대국으로 키워낸 인물입니다.
1871년엔 이 가문의 빌헴름 1세가 독일제국을 건설, 프로이센 왕과 독일 황제를 겸했습니다. 이어 손자인 빌헴름 2세가 황제의 지위를 이어 받았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호엔촐레른 가문의 오랜 영광도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호엔촐레른 성에 들어가면 이렇게 가문의 가계도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중세의 유럽은 각국들이 혼맥 관계로 얽히고 설켜 있었기 때문에 가계도를 정확히 그리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가문에서 배출한 위인들의 동상입니다.
호엔촐레른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원형의 길을 빙빙 돌거나 몇개의 관문을 거쳐야만 합니다. 그만큼 요새의 성격이 강합니다.
독일의 성들은 적들의 접근이 어렵고, 적들의 동태를 쉽게 살필 수 있도록 산꼭대기에 건설된 게 거의 대부분입니다. 이는 독일 지역이 그만큼 오랫동안 왕권이 강하지 못해 영주들의 군웅할거가 잦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면 프랑스의 성들은 평지에 세워져 있는 게 많습니다. 물론 독일에 비해 산지가 적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오래전부터 강한 왕권으로 인해 영주들의 세력 다툼이 그만큼 적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입니다. 성의 구조 또한 독일과 달리 요새의 형태가 별로 없다는 점도 그 증거의 하나입니다.
암튼 호엔촐레른 성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정말 시원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멀리서 호엔촐레른 성을 보면 마치 산위에 왕관이 씌워져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늘을 찌를듯 위로 치솟은 첨탑들이 그런 모양을 만들어냅니다. 그만큼 호엔촐레른은 위엄있고, 기품이 있습니다.
독일에는 정말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만큼 많은 고성들이 있지만 호엔촐레른 만큼은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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