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로마제국의 작은 보석 상자'
뉘른베르크를 일컫는 별칭입니다. 그만큼 뉘른베르크는 역사도 오래 되었고, 그만큼 아름다운 도시라는 얘기일 것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뉘른베르크는 신성로마제국뿐만 아니라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도 보석같은 도시였습니다. 그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우선 뉘른베르크의 상징인 카이저부르크에 올랐습니다.







독일어에서 뒤에 부르크가 붙은 것은 성채를 뜻합니다. 그것도 주로 수비를 주임무로 하는 요새의 성격이 강합니다.

카이저부르크는 1050년에 처음 세워졌으니 거의 1천 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뉘른베르크 도심과 마찬가지로 카이저부르크도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공습으로 철저히 파괴되었다가 이후 완벽하게 복구되었습니다.












왕이 거처하는 궁전이 아닌 요새의 성격이기 때문에 내부는 무척 소박한 편입니다.







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요새이니 만큼 제일 높은 언덕에 세워져 있어 뉘른베르크 도시 전체를 내다볼 수 있는 전망이 아주 뛰어납니다.












역시 1천 년의 역사를 가진 뉘른베르크의 중심 교회 장크트 제발두스 교회의 두개의 뾰족한 탑도 보입니다.







카이저부르크에서 내려와 본격적인 시내 여행에 나섰습니다.







뉘른베르크는 여러모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한 겨울에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은 전유럽적인 명성을 갖고 있습니다. 12월이 되면 뉘른베르크는 온 도시를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하게 되고, 국제적인 시장이 열립니다.

또 한 아주 오래전부터 장난감의 도시로도 명성이 자자합니다. 인형의 집이나 가스와 증기를 이용한 장난감도 바로 이 도시의 장인들이 맨 처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뉘른베르크엔 전세계의 희귀한 장난감을 모아 놓은 완구박물관과 함께 많은 장난감점이 있습니다.

독일인들에게 뉘른베르크는 소시지로도 유명합니다. 그들은 뉘른베르크의 소시지가 제일 맛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 입맛에는 전혀 아닙니다. 한마디로 너무 짭니다.







클래식 애호가라면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를 잘 아실 것입니다. 뒤에 얘기하겠지만 뉘른베르크는 히틀러와 떼어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도시입니다.

묘한 것은 히틀러가 바그너의 열렬한 신봉자였다는 것입니다. 바그너는 굉장한 민족주의자였습니다. 그의 오페라에는 유태인들을 경멸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혹 히틀러가 바그너의 이런 점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동상입니다. 독일 르네상스 회화의 완성자이자, 민중화가이자, 독일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그는 바로 이곳 뉘른베르크에서 1471년 태어났습니다.







뉘른베르크 여행의 중심인 중앙광장입니다.







앞쪽에는 40개의 황금상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샘'이, 뒤쪽으로는 독특한 모양의 성모교회가 보입니다.

'아름다운 샘'의 쇠창살에 박혀 있는 황금 바퀴를 세번 돌리면서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늘 소원성취를 희망하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광장에는 장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과일도 팔고, 뉘른베르크가 자랑하는 소시지도 팔고, 각종 기념품들도 팔고 있었습니다.







뉘른베르크라는 도시 이름을 맨 처음 들은 것은 학생 시절 세계사 시간이었습니다. 2차 대전후 전범재판이 뉘른베르크에서 열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재판이 왜 수도인 베를린이 아니고 뉘른베르크에서 열렸을까요?







그건 추측컨데 뉘른베르크가 히틀러가 가장 사랑한 도시였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독일 제3제국의 총통이 된 히틀러는 뉘른베르크에서 2차 세계대전을 벌이기 바로 직전까지 3차례나 전당대회를 열었습니다. 전당대회란건 사실 나치 당원들의 대규모 집회와 함께 독일군의 위용을 과시하는 퍼레이드가 주 행사였습니다. 이를 통해 히틀러는 자신의 통치기반을 확고히 하고, 나치를 전세계에 홍보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전쟁 기간동안에는 뉘른베르크에서 유태인 학살이 계획되었고, 이곳에 군수공장을 마련해 무기를 대도록 하였습니다.

이 때문인 듯 연합군은 뉘른베르크에 공습을 집중, 3일만에 도시의 90%를 황폐화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후에는 이곳에서 전범재판도 열렸고요...







정확한 통계조차 잡을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사상자를 냈던 2차 세계대전이었지만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결과는 사실 좀 어이없을 만큼 싱거웠습니다.

우선 재판에 기소된 전범은 나치의 2인자였던 루돌프 헤스, 히틀러의 두뇌였던 헤르만 괴링 등 고작 21명 뿐이었습니다. 이 중 12명만이 사형, 3명은 종신형, 나머지 대부분은 10-20년 형이었고, 더구나 3명은 무죄석방되었습니다.

그외 각 지역에서 크고 작은 학살극을 벌였던 전쟁 범죄자들은 '명령에 따를수 밖에 없었던 군인'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사면되었습니다. 







암튼 독일은 90%나 파괴되었던 뉘른베르크를 전후 신속하게 옛 모습으로 완벽하게 복구하였습니다. 마치 그날의 참혹함을 지우듯 말입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일이 그렇듯, 세월이 지나면서 그날의 역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지금 뉘른베르크는 아름다운 도시 풍경과 독일인들이 가장 맛있다는 소시지를 즐기러 많은 여행자들이 찾고 있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