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는 독일 여행의 관문이자 출구입니다. 독일을 잇는 비행기의 대부분이 이 도시를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로만티크 가도와 알펜 가도를 거쳐 귀국을 위해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프랑크푸르트를 이미 한번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낯설어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멀리서도 확연히 보이는 저 스카이라인. 다른 독일의 도시에선 보기 힘든 저 고층 빌딩들은 지금까지 봐 온 독일의 아담한 도시들과는 너무나 달라 오히려 당황스러웠습니다.







마천루가 즐비한 프랑크푸르트이지만 인구는 겨우(?) 65만 명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웬만한 도시도 이 정도의 인구가 되니 우리가 얼마나 큰 인구밀집도를 가지고 있는 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우리도 옛날엔 서울에  전차가 도심 한복판을 달렸습니다만... 웬지 유럽에서 이런 트램을 보면 정겹습니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대문호이자 사상가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고향입니다. 바로 이 집의 2층에서 1749년 8월 28일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3층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를 집필했습니다.







괴테 생가 역시 2차 대전중 폭격으로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이후 복원되었습니다. 다만 가구등은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에 무사하였고, 모두 괴테가 직접 사용하던 것들이라고 합니다. 







괴테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이후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만큼이나 다재다능했습니다.

그는 26세때부터 바이마르 공국의 정치에 뛰어들어 나중에 재상까지 올랐고, 인간에게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던 간악골(
間顎骨)을 발견하여 해부학의 선구자가 되었으며, 장기간의 이탈리아 여행때는 화가로 많은 작품을 남겼고, 지질학, 광물학, 색채론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결과를 남겼습니다.












괴테는 왕실의 고관인 아버지와 시장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상류층의 부유한 집안 태생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괴테 하우스 방문은 생가를 본다는 것뿐 아니라 당시 독일상류층의 실생활 문화를 볼 수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괴테 생가를 나와 프랑크푸르트 여행의 핵심인 뢰머 광장으로 갔습니다.







중심 광장답게 시청사와 교회, 귀족의 집들이 광장을 둘러 싸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수많은 멋진 중세 도시들을 봐왔던터라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가운데가 뢰머라고 불리는 건물인데 신성로마제국 시절엔 저 집에서 황제의 즉위 축하연이 열렸다고 합니다. 그 후 귀족의 저택으로 사용되었고, 한때는 시청사로도 쓰인 유서깊은 건물입니다.











다른 유럽의 광장과 마찬가지로 뢰머광장에도 다양한 거리 공연이 펼쳐집니다.












사실 여행자 입장에서 프랑크푸르트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그렇게 매력적인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지요. 

프랑크푸르트라는 말은 '프랑크 족의 여울'이란 뜻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를 이용해 어업과 수운업으로 도시가 발전해왔습니다. 상업의 발달은 금융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지금도 전세계의 금융업을 주무르고 있는 그 유명한 로스차일드가(家)의 본거지가 바로 이곳입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EU 결성 후 유럽의 중앙은행도 프랑크푸르트에 두고 있습니다.

암튼 프랑크푸르트 방문을 마지막으로 독일 여행을 모두 마치게 되었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