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돌쌓기 대회가 있다면 세계 1등은 단연 잉카인들일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크기와 무게의 돌을 쌓아 올리면서 면도날 하나 들어가지 않을 만큼 초정밀한 그들의 석공술은 그야말로 신기(神技) 그 자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쿠스코 시내의 로레토 거리에서 이미 12각의 돌을 보았지만 잉카인들의 돌쌓기 신공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는 근처의 삭사이와만 유적입니다.








삭사이와만은 '독수리여 날개를 펄럭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쿠스코는 전체가 퓨마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이미 쿠스코 1편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퓨마의 머리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삭사이와만입니다.

처음에 삭사이와만은 쿠스코의 동쪽을 지키는 견고한 요새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퓨마의 머리 부분에 해당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삭사이와만은 단순한 요새가 아닌, 그 이상의 종교적 의미까지 가진 장소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정말 정교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미얀마 바간왕조의 나라투 왕이 따마얀지 사원을 건립하면서 벽돌 사이에 바늘 하나만 들어가도 건축가들을 무참히 죽였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잉카인들이 한 수위입니다.







돌 하나가 가장 큰 것은 높이 5m에 무게가 360톤이나 나갑니다. 이 거석들은 꽤 먼 곳에서 운반해왔다고 하니 그 당시에 어떤 방식으로 운송해왔을지 신비할 따름입니다. 












삭사이와만의 성벽은 3단으로 되어 있으며 총 길이가 1,100m입니다. 이 규모로 성벽을 쌓으려면 하루 3만 명의 인원이 80년동안 공사해야 한다고 합니다.







잉카 제국의 경제적 기반은 농업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옛날에는 성채위에 거대한 해시계를 설치해 농사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견고한 요새도 스페인의 침입을 막진 못했습니다. 바로 이 자리서 잉카의 3만 대군은 불과 300명 밖에 안되는 스페인군에 무참히 살육당했습니다. 1536년 5월 어느날입니다.

아무리 스페인군이 기동력이 뛰어난 말을 사용하고, 훈련이 잘되어 있다고 해도 3만 잉카 대군이 100분의1 밖에 되지 않는 병력에 속수무책으로 패배했다는 것은 사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삭사이와만 앞의 넓은 광장엔 지금도 매년 6월24일에 '태양의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잉카 시대의 의식을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페루인들의 자부심을 드높이고 있는 것이죠.







삭사이와만의 많은 돌들은 스페인이 쿠스코를 건설하면서 마구 허물어 갔기 때문에 일부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삭사이와만을 내려오는 길에 잉카의 후예들을 만났습니다.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사진 모델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잉카의 후예들을 보니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겠지요.







삭사이와만에서 멀지 않은 곳엔 마치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로에서 본 것 같은 거대 예수상이 두 팔을 벌리고 쿠스코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역사가 승자의 것이듯 신도 승자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언듯 들었습니다. 물론 승리도 신의 뜻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무참한 살육의 현장 위에 세워진 예수상은 이런 저런 상념에 젖게 했습니다.







암튼 예수상 옆으론 쿠스코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멋진 전망대가 있었습니다.







쿠스코의 중심인 아르마스 광장도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빨간지붕의 집들이 정말 스페인의 한 도시를 연상케 합니다.







그 옆으론 잉카의 또 다른 후예들이 조악한 기념품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의 옛날 전차가 무척 생뚱맞아 보였습니다.







우리는 삭사이와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겐코 유적을 찾았습니다. 겐코는 잉카의 케추아어로 지그재그, 즉 미로를 뜻합니다.

겐코 유적은 돌을 쌓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돌을 깎아서 만들었습니다.







겐코 유적은 해발 3,800m 꼭대기에 있습니다. 쿠스코에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걸을 땐 숨이 나도 모르게 가빠왔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묵직해지는게 서서히 고산증세가 오는 듯 합니다.







겐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6m의 크기로 부조된 퓨마 상이었습니다. 이곳에 제물의 피를 흘려 점을 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겐코는 제례 의식용 신전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겐코에서 차를 타고 10여분 가니 푸카푸카라 유적이 나왔습니다.

이곳에 도착하니 비가 조금씩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다 리마에 비가 내리면 '잉카의 눈물이 내린다'고 한다는데 이곳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푸카푸카라는 쿠스코의 북쪽을 통행하는 사람들을 검문하던 요새입니다.







이 매끈하게 잘 정돈된 유적은 탐보마차이입니다. '성스러운 샘'이라고 불리는데 홍수때건 가뭄때건 늘 일정한 양의 물이 솟는다고 합니다. 



 



근처의 강과 호수에 색소를 풀어봤는데 결국 이 물의 수원지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물도 늘 증류수처럼 맑아 '성스러운 샘'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듯 합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