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대단한 것을 보면 난 감탄보다 우선 한순간 멍해지고 맙니다. 그러고나선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쉬게 됩니다. "아!. 이런거였구나!"

중남미 여행에선 세군데가 그랬습니다. 아르헨티나의 페리토 모레노 빙하가 그랬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폭포가 그랬으며, 바로 이 페루의 마추피추가 나를 순간 진공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전망대에서 마추피추를 직접 내려다보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벅차오름을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옆에서 가이드가 마추피추에 관해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건만 내 눈길은 계속 이 엄청난 유적에 꽂혀 있을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냥 전망대에 털썩 주저 앉아 하루종일 이 모습만 바라보고 싶었지만 곧바로 유적 사이를 걸어보면 또 어떤 놀라운 느낌이 들까 궁금해졌습니다.







잉카인들의 석조 기술은 정말 알아줘야 합니다. 이 견고함과 정교함으로 마추피추는 그 오랜세월동안 수많은 지진활동이 있었음에도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지붕을 제외하곤 모든 것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잉카인들은 바퀴를 만들어내진 못했습니다. 때문에 이 꼭대기까지 저 엄청난 돌들을 어떻게 옮겨 왔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분명 그들만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었을테지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아쉬울 따름입니다.







석조술 뿐 아니라 거의 45도에 달하는 이 비탈을 개간한 논 만들기 기술도 정말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쪽에선 여전히 복구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지금의 페루인들은 잉카인들에 비해 돌쌓기 만큼은 몇 수 아래로 보입니다.







태양의 신전입니다. 마추피추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였을 것입니다. 제사를 지낼 때 이 광장엔 1만 명에 달하는 잉카인들이 일제히 모여드는 장관을 연출했을 것입니다.







한 때 잉카는 페루를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에콰도르, 남쪽으로는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이르는 대제국을 이루었습니다. 그야말로 남미 전체를 지배한 유일무이한 제국이었습니다.







전체 인구만해도 1,200만 명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런 대제국이 1532년, 병력이 겨우 200여 명에 지나지 않은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에게 순식간에 무너졌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 때가 잉카의 전성기였는데도 말입니다. 분명 우리가 아직 모르는 뭔가가 있을 것입니다.







'신성한 광장'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신전과 신관들의 주거지가 모여 있는 장소입니다.

마추피추는 스페인군에 쫓긴 잉카인들의 대피소였다는 게 대체적인 학계의 연구결과입니다. 하지만 거대한 신전과 신관들의 주거지를 보면 이곳이 단순한 임시 대피소가 아니라 잉카인들이 영원을 기약하며 만든 계획 도시가 아닐까 추정되기도 합니다.







마추피추의 중심부에 있는 해시계입니다. 이곳에 가면 늘 해시계의 기운을 받으려고 이를 어루만지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하지만 해시계라는 것도 역시 그냥 추정일 뿐입니다.







사실 마추피추가 잉카인들이 만든 도시인가 여부도 확실치 않으니 제대로 알려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입니다.







지난 1988년의 탄소 측정 결과는 서기 800년대에 이미 이곳에 정착해 산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잉카 이전의 시대입니다. 심지어 유적 중 가장 오래된 곳은 기원전후라는 연구도 있습니다.

마추피추를 발견한 하이럼 빙엄은 원래 잉카인들의 마지막 수도라는 빌카밤바를 찾아 나선 길이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빌카밤바는 '매우 높은 산 위에 있으며, 정교한 기술로 건조된 장대한 건물이 우뚝 서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빙엄은 마추피추를 발견하고서 이를 빌카밤바라고 철썩 같이 믿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탄소 측정 결과는 마추피추가 빌카밤바가 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빌카밤바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어딘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거대한 공중도시가 또 있다는 얘기일까요?







그래서 최근엔 마추피추는 원래 존재했지만 버려진 도시였고, 스페인에 쫓기던 잉카인들이 피난처로 재건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무덤으로 추정되는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많은 미라가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미라중에 남자는 하나도 없고, 오직 여자들 뿐이었다는 점입니다.

이를 두고 또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히 엇갈리고 있습니다. 잉카 군대가 마지막 출정을 앞두고 돌아오지 못할 것에 대비해 여성들을 먼저 장례 지냈다는 설, 원래부터 마추피추는 여성들과 노약자들만의 피난처였다는 설, 마추피추가 피난처가 아니라 여사제들만의 종교도시였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

결국 제대로 알려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겠지요...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는 정말 악랄할 정도로 잉카의 모든 것을 부수었습니다. 쿠스코에서 보았듯 기단부만을 남겨두고 건물은 모두 허물어 버린뒤 궁전위에는 총독 관저, 신전 위에는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정작 잉카의 건물은 어떤 모양이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축조했는지 전혀 알길이 없었습니다. 마추피추가 발견되기 전까지 말입니다.
 





마추피추 발견 이후 잉카의 모든 것들은 학자들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석조기술과 건축술, 농사기술, 천문학 등 곳곳에서 드러나는 잉카인들의 놀라운 과학수준은 잉카를 단순히 신비 문명에서 고도 문명으로 위치를 격상시켜 놓았습니다.

그래서 하이럼 빙엄의 마추피추 발견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유적 발굴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학자들이 마추피추에 관해서 밝혀낸 것은 아직 거의 없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가장 핵심인 언제 만들어졌고,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으며, 그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답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추피추에 관해서 또 하나 경이로운 점은 까마득한 계단식 논입니다.







보다시피 우루밤바 강은 한참 아래에 있습니다.







2,000m가 넘는 이 고지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무엇보다 물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것도 무려 1만 명이나 되는 대식구가 먹고 살기 위해선 상당한 양의 물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추피추를 발굴하면서 학자들은 이 점을 유심히 살폈는데 그 결과 곳곳에서 17개나 되는 우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계단식 논을 연결한 관개용 수로도 정밀하게 마련되어 있다는 점도 알아냈습니다. 







우물이 빗물을 받아 놓는 정도의 기능이라면 1만 명이 쓰기에는 어림도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농업용수까지 하려면 아래의 우루밤바 강물을 길어오는 정도는 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잉카인들이 이미 사이펀의 원리를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기압차를 이용해 물을 끌어올리는 고도의 방법입니다. 그만큼 당시의 과학적 수준이 굉장했다는 얘기겠지요.







입구의 대규모 계단식 논으로 나오는 길에 다시 뒤돌아 보았습니다. 아무리봐도 잉카인들의 돌쌓기는 정말 예술의 경지입니다.







우리처럼 마추피추를 만난다는 설레임을 안고 전세계에서 찾아온 여행자들이 계단식 논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사이펀의 원리고 뭐고 간에 45도 급경사에 만들어진 계단식 논은 정말 경이로웠습니다.







관리인의 집들인데 적들의 동태를 감시하는 망루 역할도 겸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이렇게해서 마추피추 여행을 마치고 유적지를 나왔습니다. 입구 바로 앞엔 TINKYU라는 뷔페식 식당이 있습니다. 마추피추 꼭대기에 있는 유일한 식당입니다. 위치가 위치이니만큼 무척 비싼 집입니다. 하지만 이 집에서 식사를 하는 덕에 마추피추를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저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이 길엔 마추피추의 또 다른 명물인 '굿바이 보이'가 있습니다. 버스가 모퉁이를 돌 때마다 인디오 복장을 한 소년이 나타나 손을 흔들며 굿바이를 외치는 것입니다. 소년은 버스보다 빨리 나타나기 위해 저 산등성이를 내내 뛰어야 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소년입니다. 이 소년은 순전히 뛰어서 버스보다도 빨리 맨 아래의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아이를 버스에 오르게 한 후 조금씩 팁을 주었습니다. 

한 때 페루 당국은 위험하다하여 '굿바이 보이'를 금지시켰습니다. 하지만 전세계 여행자들의 요청으로  몇년전부터 저 길에는 다시 굿바이 보이가 나타나 여행자들을 환송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마추피추에 머물던 그 많던 잉카인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모두 곤도르가 되어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정말 빌카밤바라는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집단 이주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저 산 깊숙히 어딘가엔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채 마추피추보다 더 큰 공중도시가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쿠스코로 돌아왔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