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코에서 리마를 거쳐 미스테리한 거대 지상화로 가득한 나스카로 가는 길입니다.

리마 시내를 조금 벗어나자마자 곧바로 황량한 사막 지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도로 옆은 바라만봐도 한숨 나오는 빈민가의 연속이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스르르 미끄러져 내릴 것 같은 모래 언덕위의 집들은 그야말로 사상누각처럼 참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페루의 극심한 빈부 격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풍경입니다.








가는 길에 파차카막(Pachacámac) 문화의 유적이 있어 잠시 들렀습니다.







우리가 아는 중남미 문명은 대개 마야나 잉카 정도가 고작입니다. 하지만 워낙 땅덩이가 넓다보니 지역 곳곳마다 수많은 문화가 존재했습니다. 다만 문자가 발명되지 않아 남아 있는 기록이 거의 없고, 게다가 이곳을 정복한 스페인인들이 대부분의 유적을 파괴하는 바람에 그 문명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알려진 것은 거의 없습니다.

리마에서 30여 km 떨어져 있는 파차카막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유적지에 들어서니 모래 바람이 부는 가운데 흙 벽돌로 지어진 폐허들이 이곳저곳에 덩그러니 남아 있어 스산한 느낌마저 주었습니다.







파차카막 문화는 서기 200년 경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5세기 중엽 잉카에게 정복되기 전까지 거의 1,300 여년간을 남미 대륙 중부 서해안을 지배해왔던 강성한 왕국이었습니다.

잉카인들은 파차카막을 정복한 이후에도 이곳을 신성한 장소로 여기고 피라미드를 세워 태양의 신전으로 삼았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나라가 천 년 이상을 지속했다는 것은 정말 드문 일입니다. 그만한 경제력과 정치력, 군사력, 행정력 등 모든 분야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지속성에 비해 파차카막에 대해 알려진 것은 어이없을 정도로 거의 없습니다.







잉카인들이 세운 태양의 신전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웅장함이 느껴질 정도로 제법 규모가 컸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거대한 돌을 정교하게 잘라 쌓아 놓은 것이라면 파차카막의 피라미드는 모두 진흙을 구워 만든 벽돌이었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건축물을 세우려면 도대체 몇개의 벽돌을 구워야 하는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파차카막은 이 세상을 만든 위대한 창조주입니다. 그야말로 조물주인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잉카인들은 파차카막의 태양 신전에서 신탁을 얻었다고 합니다.

일설에 의하면 스페인군이 쳐들어 왔을 때 신탁은 잉카인들의 승리를 예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잉카의 황제가 신탁이 빗나갔음을 불평했다고 하는 데 확실한 얘기는 아닌 듯 합니다.







태양의 신전 꼭대기에 오르니 드넓은 파차카막 신전터가 한눈에 보였습니다. 터만 봐도 엄청난 규모의 신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보단 황량한 사막 풍경이 더 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멀리로는 마을도 하나 보였습니다.







카메라로 댕겨보니 지나오면서 봤던 빈민가들과 달리 아주 고급(?)스러운 마을입니다.







파차카막 신전 위에는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습니다. 건축자재로 쓰기 위해 사람들이 벽돌을 빼가는 것을 제외하곤 그리 경계를 설 일도 없을 듯 한데 이곳을 갈 때마다 늘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정상에 오르니 태평양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마야인들도, 잉카인들도 언젠가 그들의 신이 태평양을 건너 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 신화 때문에 이들은 스페인 정복자들을 그들이 기다리던 신이라 오해했고, 허무한 멸망의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태양의 신전에 올라 태평양을 바라보니 이 어이없는 사태가 떠올라 인디오들의 역사가 참으로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차카막 유적지 앞으론 판 아메리카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고속도로입니다.







태양의 신전을 내려와 달의 신전을 가볍게 둘러 보았습니다. 왕실의 여인들과, 제물로 바쳐질 여인들에 대한 교육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순전히 진흙 벽돌로 이런 거대한 신전을 지었다는 것은 이 곳이 비가 좀 처럼 오지 않는 매우 건조한 지역임을 뜻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엘니뇨 현상으로 비가 자주 내리면서 진흙이 녹아 흘러내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복원 작업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그럴리 없겠지만 파차카막을 완전히 복원한다면 중남미에선 정말 보기 드문 어마어마한 유적이 될 것 같습니다. 그만큼 유적터가 굉장히 큽니다.







일부는 이렇게 복원한 곳도 있습니다.







너무 완벽하게 복원한 것일까요? 아님 엉터리 복원일까요? 마치 최근에 지어진 건물 같아 오히려 생뚱맞아 보였습니다.












유적지 내엔 자그마한 박물관도 있어 파차카막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 보관하고 있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파차카막 문화는 콘도르 무늬를 특색으로 하는 아름다운 토기와 직물을 생산했다고 하는 데 이 박물관에선 특별히 관심을 끄는 유물은 없었습니다. 유적터의 크기에 비해 출토된 것이 너무 빈약한 듯 합니다.







유물보단 전체 조감도가 더 눈길이 갔는 데 정말 방대한 규모입니다.







파차카막에서 나오니 제법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졌고,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꽤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뿐이었습니다. 판 아메리카 고속도로 양 옆으론 보다시피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사막이 계속되었습니다.







사막의 끝이 보이지 않는 왼편의 풍경과 달리 오른 편은 바로 드넓은 바다입니다. 바다를 따라 사막이 계속되는 풍경은 생소했지만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이 길을 계속 달려 우리는 이카에 이르러서 정말로 완벽한 오아시스를 보았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