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앞 바다엔 바예스타스라는 아주 작은 섬이 하나 있습니다. 바다사자, 물개 같은 바다동물들과 수많은 새들이 산다고 하여 '제2의 갈라파고스'라 불리는 동물의 천국입니다.

우리는 나스카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곳을 가기 위해 파라카스라는 동네의 작은 선착장으로 갔습니다.







선착장엔 제법 많은 펠리컨들이 몰려 있어 시작부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펠리컨들은 사람들이 전혀 무섭지 않은 듯 동네 아이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 먹으며 함께 놀고 있었습니다. 사람과 동물이 이렇듯 스스럼없이 어울려 노는 것이야말로 정말 '자연'스러운 풍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다와 접한 곳조차 저렇게 풀 한포기 없는 사막이 있다는 것이 아무리봐도 신기했습니다.







경험상 제2의..뭐라고 불리는 것치고 변변한 것을 본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 바예스타스에 대해선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보단 바예스타스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칸델라브라라는 저 커다란 그림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칸델라브라는 촛대라는 뜻입니다. 마치 촛대 같은 모양이라서 그냥 그렇게 불렀습니다. 물론 나스카 라인과 마찬가지로 누가 왜 무슨 목적으로 이 거대한 그림을 그렸는지는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습니다.

다만 그림의 위치로 보아 고기잡이 배들의 길잡이 역할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 그림이 작게 보일지 몰라도 길이가 128m에 폭이 76m,  깊이가 60cm로 새겨진 엄청난 크기입니다. 아주 맑은 날엔 20km 밖에서도 볼 수 있다하니 그런대로 일리있는 추측이긴 합니다.







등대 역할이라면 왜 굳이 촛대 모양으로 그림을 그렸을까요? 이런 궁금증을 안고 바다로 더 나가니 경치가 아주 그만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록 새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걸 보니 바예스타스 섬이 가까워오는 모양입니다.







드디어 옆으로 넓게 퍼진 모습의 바예스타스 섬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얼핏 봤을 땐 그냥 드넓은 태평양 위에 외롭게 서 있는 평범한 무인도 같아 보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섬 곳곳이 이렇게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게 경치가 아주 아름답습니다. 점점 더 흥미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우릴 제일 먼저 맞아준 건 귀 따가울 정도로 시끄러운 새떼들의 울음이었습니다. 더 가까이 가보니 섬 위에는 새떼들이 정말 바글바글합니다.







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었습니다. 섬 뒤쪽엔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새들이 많았습니다.







워낙 많은 새들이 정신없이 날아다녀 얘네들도 새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펭귄입니다.







이미 자료를 통해 바예스타스에 펭귄이 산다는 것을 알고 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직접 보니 좀 의외다 싶었습니다. 이 지역이 그리 추운 지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암튼 섬 곳곳에 펭귄의 무리가 정말 많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펭귄을 한꺼번에 본 것은 처음입니다.







한쪽 해변은 바다사자와 물개들의 차지입니다. 멀리서는 그냥 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니 돌처럼 보이던게 전부 바다사자와 물개였습니다. 어찌나 많던지.. 바다사자와 물개도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것은 역시 처음 보았습니다.







바다 표범인가요? 사실 잘 구분하지 못하겠습니다.







물개 한마리가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고 있습니다. 표정이 무척 귀여워 보입니다.







종류는 달라도 얘네들은 무척 사이가 좋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배가 가까이 다가가자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경계를 보내는 듯 일제히 소리를 질러 댔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정말 시끄러웠습니다. 새울음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소리만 질러댈 뿐 더 이상의 경계심은 없는 듯 했습니다.







바예스타스는 사실 하나로 이루어진 섬이 아닙니다. 위 사진에서 보듯 144개의 작은 바위로 이루어진 섬들이 모여 바예스타스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예스타스 군도인 셈입니다.







뭐니뭐니해도 바예스타스에서 제일 놀라운 점은 정말 엄청나게도 많은 새입니다.







저 위 까만게 뭐라고 생각되시나요? 난 처음에 불이 나서 풀이 탄 흔적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저 까만게 전부 새들입니다. 정말 새까맣게 몰려 있습니다. 바예스타스 말고 또 어디서 이렇게 많은 새를 볼 수 있을까요? 세계를 웬만큼 다녀봤지만 생각나는 데가 없네요.







그런데 저 새가 알고보니 황금알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저 새가 싸놓은 똥이 황금덩어리입니다. 저 새똥을 놓고 엄청난 국제 전쟁까지 벌어진 것을 아십니까?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 새똥이 모이고 모여 퇴적한 것을 구아노(Guano)라고 합니다. 페루의 새똥산업은 역사도 오래 되었고, 19세기에는 굉장히 중요한 산업이었습니다. 19세기는 산업혁명뿐 아니라 농업혁명도 일어난 시기입니다. 세계적인 규모로 농산물 증대가 이루어지면서 페루의 구아노가 천연비료로 각광받게 되었습니다.

이 새똥을 두고 나중엔 인류 최초의 자원전쟁이 벌어졌으니 조금 과장하면 오늘날의 석유와 동급의 대접이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페루는 그야말로 새똥으로 돈벼락을 맞았습니다. 엄청나게 쌓여 있는 새똥을 그냥 퍼담는 것만으로 그냥 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욕심이 화근이었습니다. 페루는 여세를 몰아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만드느라 막대한 부채를 유럽에서 끌어다 썻습니다. 담보물은 구아노였습니다.

하지만 설탕플랜테이션 사업은 실패했고, 페루는 채무불이행 선언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게 또 인류 역사상 최초의 디폴트 선언입니다.







디폴트 선언과 함께 페루는 구아노를 국유화시켰습니다. 이는 유럽 농업에 막대한 타격을 가져왔습니다. 이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 미국이 페루를 응징하는 전쟁을 벌였고, 페루는 일방적으로 패배하면서 막대한 부채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국제적인 자원전쟁이 페루의 새똥을 두고 벌어졌던 것입니다.







지금 페루 경제의 어려움은 이 때의 국가 채무에서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탓도 큽니다.

암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새똥산업이 인류 최초의 자원전쟁과 디폴트선언을 불러왔을 정도니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산업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포대에 담은 구아노를 배에 싣는 선착장입니다. 배를 저 밑에 대고 실어내온 다음 전세계로 수출합니다.







오른쪽 건물이 새똥을 모아 두는 창고입니다.

한 때 페루의 새똥은 인공 비료가 생산되면서 완전히 찬밥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페루 경제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새똥은 특히 인산성분이 풍부해서 최고의 천연 비료로 꼽힌다고 합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웰빙 바람이 불면서 페루의 이 천연 유기농 비료가 다시금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없어서 못 팔 정도라는군요.







바위벽에는 빨간 불가사리들이 마구 걸어다니고 있었습니다. 불가사리가 걷는 모습도 바예스타스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새들이 시끄럽든, 똥을 싸든 물개는 아무 관심도 없는 모양입니다. 그냥 낮잠이나 방해하지 말라는 듯 무심합니다.







여행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다시 바예스타스를 돌아봤습니다. 여전히 많은 새들이 섬 주위를 날고 있었습니다. 처음 섬에 다가갔을 땐 '새똥으로 섬이 오염되지 않을까' 라는 걱정도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알고 나선 오히려 "얘들아! 똥많이 싸라"라고 좀 웃기는 부탁을 새들에게 하고 싶어졌습니다.  







돌아 나오는 길엔 마침 돌고래들의 배웅까지 받았습니다. 운수대통이었습니다.

바예스타스는 위에서 한번 말한 것처럼 제2의 갈라파고스라고 불립니다. 물론 갈라파고스에서와 같은 거대한 바다 거북이나 이구아나 같은 독특한 해양동물은 없습니다. 하지만 동물의 개체수로만 따진다면 단연 바예스타스가 훨씬 더 많을 듯 합니다.

기대가 크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바예스타스 여행은 의외로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바예스타스 바닷가에 해가 지고 있습니다. 이제 새들도 날개를 접고 쉬어야 할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새들이 모두 섬에 내리면 앉을 데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정말 발 디딜틈 하나 없이 너무나 많아서... 이런 괜한 걱정을 해가며 리마로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