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2. 6. 12. 06:00


2009년 6개월여 간의 유럽여행 중간에 베로나를 넣은 건 순전히 오페라축제 때문이었습니다. 고대 원형극장에서 화려하게 펼쳐지는 오페라 무대에 대한 명성을 귀가 따갑게 들은 터라 그 열기와 감동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등지를 여행할 때 마다 꼭 만나게 되는 고대 원형극장에서 나는 늘 무대에서 소리를 내어보곤 했습니다.

소리가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그 당시 사람들은 이곳에서 어떤 즐거움을 느꼈을지 상상해보는 것이 원형극장을 만나는 재미였습니다. 그런데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 직접 그 무대를 즐길 수 있다니 베로나로 향하는 기차를 타면서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8월 13일 무더운 여름 밤, 공연 시작 세 시간 전부터 베로나의 아레나 원형극장 주변은 세계 각국에서 몰려 온 여행자들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습니다. 긴 줄을 선 끝에 드디어 야외극장 안에 들어서자 난 그 엄청난 규모에 우선 압도당했습니다. 그리고 극장을 꽉 채운 2만 명의 관중도 장관이었습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전통의식에 따라 공연 시작 전에 지휘자와 공연출연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청중들의 촛불 의식이 열렸는데 이것 또한 대단한 광경이었습니다.




밤 8시. 드디어 카르멘이 시작됐습니다. 무대가 넓으니 등장하는 배우들도 수십 명, 심지어 무대에 말도 돌아다니는 등 역시 스케일이 대단했습니다. 관현악과 합창단을 포함해 300여 명이 이루는 자연의 순수한 화음에 온 베로나가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색창연한 옛 로마시대 원형극장에서 총총한 별빛을 받으며 귀에 익은 ‘투우사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 낭만적이었습니다.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준 모든 인연들에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황홀한 축제는 새벽 1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2만 명의 관중 중 중간에 자리를 비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고대 유물을 박제된 유물로 놔두지 않고 문화와 사람의 향기를 입혀 모두의 축제로 만들어내는 베로나의 여름밤이 그립습니다.

                                                                                                                         [이은정]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