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2. 8. 22. 06:00

 



이미 여러 번 가 본 장소라 하더라도 유난히 달리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나에게 로마는 맛있는 피자와 아이스크림의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베르니니가 나의 로마를 완전히 다른 장소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이 불멸의 조각가를 알고 난 다음의 로마는 돌무더기 유적들만 즐비한 로마가 아니라 이 거장의 작품들이 살아 숨쉬는 경이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로마의 디자이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바티칸에서부터 박물관, 성당, 그리고 나보나 광장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실적이고 역동적인 작품들을 찾아 난 열흘 동안 로마 곳곳을 열정적으로 찾아 다녔습니다.

지난달 북프랑스 여행을 준비하면서 난 새로운 사람을 만났습니다. 바로 에릭 사티라는 음악가입니다.




몽마르트의 뮤즈, 수잔 발라동과의 애절한 러브스토리에서부터 그만의 독창적이고 기이한 음악세계까지….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그의 고향 옹플뢰르에 가는 것은 이미 자그마한 두근거림이 되어 있었습니다.

22살에 작곡한 대표작 ‘짐노페디’는 고대 그리스의 나체 남성이 춤추는 의식을 상상한 제목답게 간결함과 단순함으로 가슴을 울려옵니다.

또한 요즘 푹 빠져있는 음악인 ‘저는 당신을 원합니다’라는 제목의 ‘JE TE VEUX’는 처음이자 마지막 연인인 수잔 발라동과 열렬히 연애하고 있을 때 만들어진 작품인데 사랑에 빠진 연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곡입니다.

끈적대거나 느끼하지 않고 깔끔하고 그림 같은 피아노 선율은 마치 첫 데이트의 따뜻한 기억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사티의 음악이 주는 신의 숨결 같은 맛에 길들여지면 쇼팽의 샴페인이나 브람스의 독한 맥주 맛이 더 이상 성에 안 차게 된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옹플뢰르에 도착했습니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도시라는 명성답게 옹플뢰르는 나무로 만들어진 교회, 작고 오래된 카페들, 화사한 원색으로 채색된 성냥갑 같은 건물 등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법이 곳곳에 숨어있었습니다.

나로선 에릭 사티 덕에 허름한 뒷골목 하나하나까지 옹플뢰르의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늦장마인 요즘, 비가 내릴 때마다 옹플뢰르의 작은 골목길을 걸어 에릭 사티의 집으로 그를 만나러 가던 아침이 생각납니다. 그날도 비가 내렸었습니다.

그 아침에서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니 난 이미 신의 숨결 같은 사티의 깊은 맛에 길들여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은정]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