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2. 10. 31. 06:00

 


‘이런 말 하면 웃을지 모르지만 난 내가 마음에 든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잘났다거나 뭘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나라는 사람의 소소한 부분이 마음에 든다는 말이다.

우선 나는 내가 한씨라는 게 마음에 든다. 공씨거나 노씨거나 변씨면 어쩔 뻔 했나. 공비야, 노비야, 변비야보다 한비야가 백번 낫지 않은가.

내가 58년 개띠라는 것도 마음에 든다. 특징 없는 57년 닭띠나 59년 돼지띠보다는 말도 많고 탈도 많고, 동호회도 많은 58년 개띠라서 좋다.

나는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다. (중략)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생이 괴롭다고 몸부림치며 살기보다 재미있다고 호들갑 떨며 살기를 선택한 내가 나는 제일로 마음에 든다.‘

 

얼마 전 읽은 한비야 씨의 「그건 사랑이었네」의 한 구절이다. 저런 ‘초긍정’ 마인드를 가진 한비야 씨를 참 부러워하며 가끔 인생이 무기력 해질 때마다(?) 꺼내서 보려고 갈무리 해 두었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나도 유리한 조건들이 꽤나 있다. 작가 부러워 할 것 없이 나 역시 여행 인솔자로서의 권가을 버전을 한 번 만들어 보았다.

가끔 ‘가스나가 키만 멀대 같이 크다’는 말을 듣지만, 난 내가 키가 커서 좋다. 깃발 따위(?)를 들지 않아도 웬만한 손님들은 어디서든 나를 볼 수 있다. 나 또한, 손님들이 시야에 잘 들어와 아~주 편하다.

남들은 꼼꼼하지 못하다고 타박하지만 난 덜렁대는 내 성격이 좋다. 덕분에 출장 나갈 때마다 한 보따리나 되는 답사자료에 낑낑 대야 하고, 여행지에선 팔이 빠져라 메모해야 하지만, 그건 결국엔 내 재산이 된다.

나는 여자로서 여우같지 못하고, 조금은 선머슴 같은 내 성격이 좋다. 여행인솔자라는 내 직업은 여성스러움과 치장보다는 수더분한 성격이 손님들을 위해서도, 또 나를 위해서도 좋다. 내 만약 화장품, 명품가방, 구두에 행복을 느끼는 ‘여자’였다면 매번 출장과 함께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 왔을 테니 말이다.

나는 까다롭지 않고, 좋다 못해 넘치는 내 식성도 아주 마음에 든다. 물론 출장 한 번 다녀올 때마다 늘어나는 체중이 걱정이긴 하지만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이것저것 맛있게 먹어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 고생이라는 인도 배낭여행을 가서도 살이 토실토실 붙어 왔으니 내 관대한 식성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지금 생각나는 것이 이 네 가지 밖에 없는 것도 나는 좋다. 더 많았으면 아마도 ‘잘난 척’ 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화창한 가을날 아침, 나를 좀 더 사랑하게 만드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정~말 마음에 든다.             

                                                                                                                                                    [권가을]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