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2. 11. 13. 06:00

 



여행을 준비하면서 수 천 장의 사진을 보았다. 출발 직전에 TV에서 방영된 다큐프로도 몇 번을 되돌려 보았다. 이 정도면 토루(土樓)의 형태를 눈감고도 그릴 수 있을 지경이었다.

복건성의 하문을 떠나 약 3시간여를 달렸을 즈음, 깜빡 졸다가 길가에 기이한 집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눈이 번쩍 떠졌다.

‘어라? 도대체 이것들이 다 뭐야?’ 전혀 낯선 풍경이었다. 비록 사진이었지만 수 천 번을 미리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토루는 그렇게 신기하고도 생소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토루 중 하나인 진성루를 마주하고 섰다. 이 성채와도 같은 원형의 토루는 외부인의 침입을 완벽하게 봉쇄할 수 있는 구조여서 대문만 걸어 잠근다면 쥐 한 마리도 들어갈 수 없게끔 세워져 있었다. 일찍이 보도 듣도 못했던 이 거대한 건축물의 기이함에 기가 찰 정도였다.




그리고 진성루 안으로 발길을 들여놓는 순간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원형의 마당 한가운데 세워진 조상을 모시는 사당을 중심으로 마치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방들이 4층까지 이어졌다. 이 안은 완전히 독립된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더욱 생동감이 넘치는 것은 이 신기한 집들이 관광지화된 유적지가 아니라 현재도 객가인들의 일상생활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260개의 방에 많게는 900여명이 이 토루안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그들은 모두가 한 일가(一家)라고 한다. 가히 충격적이었다. 미리 정보를 알고 왔음에도, 지금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기지 않았다.

아마 수 백 년 전에 이곳을 왔어도 충격을 받았을 터인데 지금은 21세기다. 하늘에 별만큼이나 많은 인공위성들이 떠다니고 있는 21세기에 아직도 이런 집단생활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토루안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객가인들이 미개한 소수민족들도 아니다. 그들은 중원의 전란을 피해 이주해온 정통 한족들이다. 또한 이들 중에서 해외로 진출하여 크게 성공한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청(靑)말 태평천국운동을 일으킨 홍수전(洪秀全), 중국의 작은 거인 등소평(鄧小平),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 리콴유(李光耀), 대만의 전 총통 이등휘(李登輝), 필리핀의 전 대통령 코라손 아키노, 미얀마의 전 대통령이자 군부 독재자 네윈, 호랑이연고 만금유(萬金油)로 화교 거부가 된 호문호(胡文虎) 등이 모두 객가 출신이다.

완벽하게 외부와 담을 쌓고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고 있는 객가인들이지만 실제로는 그 누구보다 넓은 세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토루의 꼭대기 층인 4층에 올라가 보았다. 어깨를 잇댄 기왓장들 너머로 방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바로 옆에 서있던 일행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이건 말도 안돼…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지만 이걸 지금 내가 보고 있다는 것도 말이 안돼…”




또 하나의 토루인 복유루에 여장을 풀었다. 시설은 열악했다. 낡은 가구들이며 거미줄이 늘어진 형광등, 바람이 송송 들어오는 아귀가 맞지 않는 창문….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정겨웠다. 머지않아 이곳 토루들을 관광지화 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라니 이 낡은 것들도 오래가지 않을 터. 그래서 더 정겨워 보였는지 모르겠다.

무이산 토루 여행은 테마세이가 갖고 있는 중국여행 상품 중 최고의 여행 상품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토루 그 자체만으로도 압권이지만 여기에 더해 무이산의 수려함과 장예모 감독의 인상대홍포쇼, 그리고 개항기 조계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하문의 고랑서 지역, 또한 청조 후기 중국의 사회현상을 교과서적으로 보여주는 하매촌(下梅村) 등은 역사학적인 흥미에도 큰 만족을 줄 것이다.

올 겨울, 추천 여행지 1순위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