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3. 3. 23. 06:00

 

호주 아웃백 여행을 마치고 앨리스스프링스에서 시드니로 가는 콴타스 항공기에 탄 순간 이제 힘든 지역이 다 끝났다는 안도감에 노곤함이 밀려왔다. 깜박 잠이 들었는데 가늘게 떨리는 높은 톤의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Would you like some drink, Sir?'

 

눈을 떠보니 스튜어디스였다. 그런데 순간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스튜어디스가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엷은 화장 탓인지 유독 주름이 많은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기내식 제공이 모두 끝난 뒤 기장으로부터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 항공기에 탑승한 스튜어디스 중에 오늘 마지막 근무를 하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그 할머니 스튜어디스의 약력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녀는 1970년에 27세의 나이로 스튜어디스가 되어 첫 비행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직 스튜어디스 한 길을 걸어와 오늘 드디어 마지막 비행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무려 42년간 승무원직을 수행하다가 69세의 나이로 은퇴한다는 내용에 기내의 모든 승객이 박수로 축하해 주었다.

 

시드니에 도착한 후 비행기에서 내리는 승객 한명 한명에게 미소로 작별인사를 나누는 그녀는 비교적 담담해 보였지만 정작 내 가슴은 뭉클해졌다. 외길을 걸어온 그녀의 깊게 패인 주름이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항공기의 스튜어디스들은 젊고 예쁘고 날씬한 미혼여성이 대부분이다. 이것이 좋은 서비스의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좋은 서비스는 교육으로만 얻어지지 않는다. 서비스 마인드는 오랜 세월 몸에 배어야만 자연스럽게 표출된다.

 

유럽의 여러 레스토랑을 이용하다보니 내 나름대로 레스토랑의 등급을 정하는 안목이 생겼다.

 

나쁜 레스토랑은 종업원의 자세도 엉망이니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괜찮은 레스토랑의 종업원들은 젊고 쾌활하며 친절하다. 때론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돋궈주기도 하는 그런 식당은 음식 맛도 틀림없이 좋다. 단 뭔가 격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싹싹함과 비례하는 가벼움 때문이다.

 

 

반면에 진짜 고급 레스토랑은 좀 다르다. 최고급 식당에는 나이 지긋한 종업원이 많다는 특징이 있는데 그들은 정중하면서도 그들 나름의 기품이 있다. 경박스럽게 까불어대지도 않는다. 서비스를 함에 있어서 군더더기도 없다. 웨이터 경력 20년, 30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들은 손짓 하나 표정 하나에도 철저하게 서비스 마인드가 녹아들어 있다. 종업원의 태도부터 품격이 느껴지는 것이다.

 

확실히 오랜 세월 동안 외길을 걸어온 사람들에게는 노련함과 함께 남들이 흉내 내기 어려운 묵은 장과 같은 깊은 맛이 느껴진다. 물론 노련함과 노회함은 다르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노련함은 노회함에 다름 아니다.

 

지난 2월, 테마세이투어도 어느새 15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적지 않은 세월이다. 테마세이투어의 얼굴에도 이제 세월이 켜켜이 쌓인 흔적을 숨길 수가 없다.

 

그동안 주위 환경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위기의 순간도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의 원칙과 소신만은 고집스럽게 지켜왔다고 자부한다. 투박하지만 살아 숨 쉬는 옹기에 우리의 정체성을 정성스레 담아 숙성시켜온 세월이었다.

 

세련되지는 못해도 오래 묵은 장맛과 같은 깊이 있는 여행을 만들어내자는 각오를 다시 한 번 다져본다.

                                                                                                                                                           

                                                                                                                                                       [마경찬]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