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2. 12. 12. 06:00


테마세이에 입사 후 상담에 진땀을 뺀 적이 있다. 다른 여행사에서 워낙 자주 유럽 출장을 다녔는지라 상담에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 자신했건만 이게 웬걸? 내가 예상했던 질문들이 아니었다.

 

다른 여행사에서 유럽 상담의 대부분은 기온이나 아울렛 방문과 관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테마세이 손님들의 질문은 달랐다. 아울렛 쇼핑에 대한 질문은 전무하고 여행의 최적기에 대한 질문이 대다수였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이다.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00 꽃은 언제 피나요? 꽃이 만개하는 시기는 정확히 언제인가요?” 같은 것이다. 그 때 나는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멍했었다.



여행에 최적기라는 것은 당연히 있다. 동남아여행은 우기를 피하고, 남아프리카의 빅토리아폭포는 물이 마르는 건기를 피한다. 꽃피고 날씨가 좋은 봄에는 유럽여행이 적기이고, 여름에는 시원한 북유럽이나 대양주 지역, 가을에는 단풍으로 유명한 캐나다, 겨울엔 동남아나 일본의 온천 지역이 여행 상식이다.

 

그러나 이번 10월23일 동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여행의 적기는 있지만, 꼭 그 적기를 고집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진귀한 깨달음을 얻고 왔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북유럽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은 꽃피는 봄에 가는 것이 적기라 생각한다. 여름엔 덥고 10월부터는 일교차가 커져 추워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추운 스페인이나 터키지역을 제외하고는 서유럽과 동유럽의 문의는 현저하게 줄어든다.



출발 전 날씨를 조회하여 보니 한낮기온은 우리나라와 비슷한데, 최저기온이 1도-5도 정도로 곤두박질 친 곳도 있었다. 추울 거라고 말씀은 드렸으나, 현지에서 느낀 체감온도는 더 떨어졌다.

 

그러나 그 매섭게 느껴졌던 추위는 너무나 아름다웠던 할슈타트의 마법 같은 설경으로 인해 한결 부드럽게 느껴졌다. 유럽에서 올해의 첫 눈을 맞은 것이다. 도로 옆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빽빽한 가로수와 어우러진 차창 밖 풍경은 카메라 셔터를 초단위로 누르게 만들 정도로 압권이었다.

 

고자우 호수를 갈 때 첫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그날 밤 할슈타트에는 어린 시절 꿈꾸던 크리스마스와 같은 광경이 동화책처럼 펼쳐졌다. 교회의 첨탑, 호수, 할슈타트의 그림 같은 집지붕 위에, 늦가을이 한창 앉아 있던 빛 고운 색색 깔의 단풍에 예기치 않은 마법의 은가루가 뿌려지면서 여행은 더욱더 운치가 있어졌다.


 

함께 여행한 손님은 "가을에 떠난 여행이 겨울여행으로 이어지고, 가을과 겨울이 함께해서 더욱 운치와 여운이 가득한 시간이었다“고 말씀해주셨다.

 

이런저런 이유로 출장 전에는 한국에서 가을을 느껴볼 새도 없었는데, 이번 출장은 온 산을 물들이고 있는 단풍과 오래된 나무에서 떨구어진 노오란 낙엽들을 보면서 가을이 주는 고즈넉함과 쓸쓸함 그리고 내 안에 숨겨진 마음의 빈구석을 만끽했던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마도 이번 출장이 없었다면 이 가을 동유럽이라는 시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안타깝게도 모르고 지나쳤으리라.

 

오래도록 기억되는 여행은 예기치 않은 순간들로부터 오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가 “유럽여행은 봄이지”라고 말할 때 정반대의 계절에 떠났던 유럽의 晩秋는 마음을 비울수록 오히려 가득 채워지는 듯한 신비의 시간이었다.

                                                                                                                                                        [성순호]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