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2. 12. 27. 06:00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고,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는 시간’

 

프랑스에선 이런 해질녘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부른다.

 

여행자보다 이를 더 실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세상 어디에서고 해는 뜨고 지게 마련이지만 일상에 무심한 국내에서와 달리 해외여행길에 서 있다 보면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 앞에 쉽게 눈물 한방울도 떨어질 수 있는 법이다.

 



인솔자 입장에선, 특히 여행 초반엔 이런 감성을 갖기가 쉽지 않다. 아직 모든 것이 낯설고, 여행을 이끌어야 한다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인해 일몰을 감상할 만한 느긋한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 막바지에 이르면 나에게도 ‘개와 늑대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긴장감도 조금씩 누그러지고, 어렵기만 했던 손님들과도 살짝궁 가까워지고, 구만리 떨어진 낯선 땅이긴 해도 여행기간 동안 정도 들었고, 하늘도 땅도, 공기 냄새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할 즈음 여행지에서의 저녁놀은 항상 내게 색다른 감정을 선사하곤 한다.

 

대낮의 작열하는 태양빛으로 가려져 있던 구름의 모양도, 구름이 만들어내는 하늘의 모습도 그대로 드러나게 만드는 뉘엿한 붉은 노을은 어쩌면 그리도 제각각인지 같은 모습의 저녁하늘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떨 땐 그 붉은 하늘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눈물이 날만큼 낯설게 다가와 괜스레 쓸쓸해지고, 마음 한켠이 울적해지기도 하는데 이때가 내가 기르던 개가 날 해치려 다가오는 낯선 늑대로 보이는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곧 미얀마로 출장을 떠난다. 때묻지 않은 아름다운 미얀마. 천년의 역사를 지닌 황금불탑을 붉게 물들일 바간의 일몰이 내게 또 어떤 모습으로 다가와 ‘개와 늑대의 시간’을 선사할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어온다.

                                                                                                                                                          [권가을]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