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3. 2. 14. 14:56


런던의 한 신문사에서 ‘스코틀랜드에서 영국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에 대해 공모를 했다. 수많은 답 중에서 1등작은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

 

얼마 전 부산에 사는 시어머님이 상경하셨다. 시어머니의 친정어머니로 올해 연세가 91세가 되시는 시할머니께서 건강 악화로 서울의 병원에 입원하셨기 때문이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어머님을 모시러 터미널로 갔다. 왜 회사도 쉬고 나왔나며 지금이라도 어서 들어가라고 손 사레 치는 어머님과 점심을 한 후 병원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어렵게 느껴지는 시어머님과 함께 하는 만큼 어색함과 긴장감으로 인해 내게는 가장 느리게 가는 지하철 여행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지하철에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그간 자세히 보지 못했던 어머님의 깊어진 주름과 한겨울에 터버린 손등과 까칠한 손가락, 그리고 염색한 틈을 비집고 나온 흰머리를 보게 되었다. 오히려 어머님과의 지하철 여행을 더하고 싶을 만큼 두런두런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뒤로하고 오늘의 목적지인 병원에 도착하였다.


병세가 악화되어 마른 나무처럼 버석거리는 시할머님의 모습을 본 시어머니와 그간 부산에서 함께 지냈던 딸의 모습을 본 시할머님, 두 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맞잡으며 뜨거운 눈물을 한참동안 쏟아내셨다. 서로의 메마른 손을 붙잡고 말없이 눈물을 삼키시는 모습을 보는 나도 눈물이 났다.

병원을 나와 어머님과 나는 다시 한 번 서울의 지하철 여행을 하였다. 이번에는 제법 긴 여행이다. 우리 집이 서울의 서쪽 끝이기 때문이다.

낮에 첫 번째 여행을 했던 터라, 두 번째는 더 편하게 느껴졌다. 말씀이 별로 없으신 어머님도 마치 친구와 수다를 떨듯이 편히 말씀하시니, 딸이 없는 시어머니에게 내가 마치 딸이 된 듯 해 기분이 좋았다.

우리 집에 와서도 한사코 주무시기를 거부하고 우리 집을 보았으니 내려가신다는 어머님을 겨 우 설득하여 첫차로 가는 것으로 합의를 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시작한지 5분. 어머님의 응답이 없으셨다. 새벽부터 한파가 몰아친 서울에 오시느라 힘드셨는지 어머님은 발도 펴지 못하고 엎드린 채로 잠이 드셨다.

이런 것도 자식에겐 부담이라며, 아들 며느리 집에서 하룻밤도 편히 쉬었다 가시지 못하는 어머님을 보니 마음 한켠이 문득 아려온다.

겨울나무처럼 앙상한 시어머님이 친정노모를 걱정하시는 모습을 보니, 아들만 둘인 시어머니가 딸 마음은 잘 모르실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란 걸 미련스럽게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오늘 어머님과 함께 한 지하철 여행 덕이리라. 비록 창밖 풍경이 하나도 안보이는 지하철을 타고 서울 시내를 강남에서 강북으로 다시 강서로 이동한 것에 불과했지만, 나는 그 지루한 지하철 노선을 가장 빠른 방법으로 이동한 듯하다.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고 나지막이 코를 골고 주무시는 오늘의 ‘여행친구’ 시어머니 옆에 나란히 누워 자고 싶었다.

                                                                                                                                                          [성순호]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