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3. 6. 11. 06:00

 


난 지프차를 타고 비포장 길을 달리는 여행이 너무 좋다. 일단 지프차를 타고 포장되지 않은 길에 들어서면 필경 문명과는 다소 동떨어진 외진 곳을 향하는 것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에 설레기 시작한다. 게다가 앞으로 고르지 못한 노면만큼이나 예측 할 수 없는 무언가가 기다릴 것 같아서 적당한 긴장감이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

 

귓속을 파고드는 지프차의 거칠고 둔탁한 숨소리가 좋고 울퉁불퉁한 노면의 굴곡이 엉덩이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도 좋다. 또한 차 뒤로 뿌옇게 일어나는 흙먼지도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표현해 주어 작은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내 마음 속에는 오래전부터 비포장 길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고등학교 시절, 배낭 한가득 캠핑도구를 잔뜩 짊어지고 동해바다로 가던 기억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시절을 그립고 또 그립게 만든다. 당시 굽이굽이 진부령을 넘어 비포장 길을 덜컹덜컹 달리던 시외버스 안에서의 9시간은 가장 행복했던 여행 중의 하나로 기억된다. 난생 처음 바다로 간다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구비를 돌 때마다 슬로우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천천히 시야에 들어오는 산골의 모습들이 너무나 신기하고 새로웠었다.

 

잘 닦인 포장도로를 타고 3시간 만에 총알처럼 쫓기듯이 달려가는 요즘의 여행길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장면들이 그때의 비포장 길에 깔려있었다.

 

내 마음 속에 아련하게 그어진 한줄기의 길이 또 있다.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젊은 날의 어느 9월, 해질녘에 찾아갔던 영주 부석사 가는 길 양편에는 먼지를 뒤집어 쓴 코스모스가 끝도 없이 하늘거렸다. 신작로 주변의 마을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느려터진 완행버스는 외길을 따라 노을진 들녘을 뒤뚱거리며 달려갔다.

 

그날 아무 승객도 없는 버스 안에 홀로 앉아 무척이나 쓸쓸했던 기억이 난다. 여행에서 쓸쓸함이 얼마나 소중한 감정인지 그 때 깨닫게 된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번화한 유럽의 그 어느 문명지보다 포장되지 않은 오지로의 여행이 더 좋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행지’보다 ‘길’을 더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차마고도(茶馬古道)에서도, 남미 안데스에서도 지프차를 타고 포장되지 않는 길을 며칠 동안 달렸다. 몽골의 고비사막도 지프차를 타고 횡단했다. 앞으로 있을 인도의 레와 라다크 지역여행도 아예 전 일정을 지프차를 타고 돌아볼 생각이다. 모두가 이름만 들어도 나를 흥분시키는 곳들이다.

 

오지를 달리는 지프차는 일제 도요타가 대부분이다. 재미있는 것은 오지에서는 신형 지프차보다 구형이 더 인기 있다는 것이다. 구형 지프차는 고장이 나도 직접 수리하고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복잡한 전자장비로 가득한 신형 차량은 오지에서 고장 날 경우 무척 난감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 비포장 길에는, 오지 길에는 현대적인 것, 복잡한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 길에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더 어울린다. 그리고 확실히 여행에는 비포장 길이 더 어울린다. 적어도 비포장도로에는 아스팔트길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감성이 길 위에 녹아있다.

 

얼마 전에 큰 맘 먹고 지프차를 장만했다. 매우 편리하게, 하지만 흉측하게 발라놓은 아스팔트를 피해 흙길을 달리고픈 오래된 바램을 주체할 수 없어서다. 더불어 상세한 지도책도 한 권 구입했다. 지도 안에는 의외로 엄청 많은 비포장길이 그어져 있었다. 어지간한 산에는 임도(林道)가 있고 곳곳에 인적 없이 버려진 옛길들이 있었다.

 

요즘 나는 오프로드를 들락거리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혼자 지프차를 몰고 산길로 들어서면 예상치 못했던 많은 것들을 만나게 된다. 잡초만 무성한 산골짜기 폐교(廢校)가 나타나기도 하고 서너 가구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을 만나기도 하며 눈이 번쩍 뜨이는 멋진 경관이 펼쳐지기도 하는데, 그 맛이 정말 쏠쏠하다.

 

무엇보다 인적이 거의 없는 호젓함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스팔트로 짓눌린 도로와는 달리 길이 살아 숨 쉬며 살갑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뒤늦게 발견한 오프로드 여행,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내 삶의 동반자가 될 것 같다.

                                                                                                                                                          [마경찬]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