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3. 5. 21. 06:00

 

아무리 많은 여행 경험을 갖고 있어도, 아니 현지에서 어느 정도 살았다고 해도 그 나라의 문화에 완벽하게 적응하기란 참으로 힘들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오랜 시간 쌓인 삶의 축적물이자 그 나라 사람의 고유한 정서와 융합된 형태로 표현되기에 그렇다. 그런데 이 작은 문화 차이가 큰 오해를 불러오는 경우가 제법 많다.

 

오늘 아침 모 일간지의 칼럼에서 프랑스의 가정집에 초대된 유학생들의 일화를 읽었다. 저녁 만찬에 초대된 학생들은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저녁식사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식 가정교육인 식불언(食不言)의 예를 지킨 것이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이 학생들에게 프랑스 안주인은 남은 음식을 싸주며 배고플텐데 들고 가서 먹으라고 건넸다는 것이다. 프랑스인의 생각엔 얼마나 굶주렸으면 말도 안하고 음식만 먹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정도면 문화적 차이가 부른 심각한 오해다.

 

언어의 표현방법에서도 오해는 쉽게 발생한다. please란 단어는 ‘제발’이라는 뜻으로 우린 배워왔다. 그러다보니 please란 단어의 어감이 머리를 조아려 비굴하게 부탁하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아니다. ‘please'는 부탁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다. 명령어에 please를 붙이면 정중한 의뢰형이 된다. ‘coffee!'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커피 가져와!‘로 받아들여 무시당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 please를 붙이면 ’커피 주실래요?‘라는 뜻으로 변한다. 실로 큰 차이다.

 

우리나라 해외여행자들에게 가장 아쉬운 점 중의 하나가 이 ‘please'란 단어사용의 인색함이다. 이 단어 하나를 생략함으로써 한국인은 곳곳에서 거만하다거나 무례하다는 오해를 받는다.

 

유럽여행의 복장에 대한 부분도 그렇다. 일단 집을 떠나 오랜 시간을 여행하려면 편한 복장이 필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가장 편한 복장은 등산복이 되어 있다. 국내는 물론 유럽 여행길에도 등산복 차림이 무척 많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도시에서의 등산복을 무척 어색하게 생각한다.

 

지난 이탈리아 여행에서 콜로세움 입장을 위해 기다리던 중 남자 12명으로 구성된 한국팀이 나타났다. 모 공공기관의 해외연수팀이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등산바지에 작은 배낭을 등에 지고 있었다. 몇 명은 중등산화 차림이었다. 이탈리안 현지가이드가 내게 다가와 저 사람들은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며 웃었다. 콜로세움 벽을 타고 암벽등반해서 넘어가면 된다는 조크였다. 그들 눈에는 무척이나 특이한 모습으로 비추고 있다는 뜻이다.

 

언제부턴가 유럽의 여행업 관계자들 사이에서 ‘몸에 딱 붙는 원색적인 컬러의 등산복을 입은 남자들’이 한국 단체여행팀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우리들 스스로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외국 현지의 습관에 무작정 따르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그 지역의 문화를 존중하려 애쓰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행위를 인정해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행자에게 완벽한 문화적 이해를 요구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누차 강조해 왔지만 여행자는 ‘실수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여행 중 발생하는 사소한 실수가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여행자에게는 ‘실수할 권리’도 있지만 지켜야할 ‘최소한의 상식’도 있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방문지에 대한 작은 배려이자 나 스스로 당당하게 여행을 즐기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마경찬]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