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3. 4. 25. 06:00

 


작년 나의 출장지는 공교롭게 모두 유럽이었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은 나를 ‘아시아가 어울리지 않는 여자’라며 놀려 대곤 했다. 그러던 중 올해는 유럽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이스터와 갈라파고스로 여행 스타트를 끊었다.

 

2월에 찾은 이스터와 갈라파고스는 지상 최고의 오지답게 하늘 아래 이런 곳이 있을까 싶었다. 이스터는 한마디로 문명의 궤도에서 갑자기 이탈되어 불시착한 것 같았고, 갈라파고스는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나 갑자기 동물의 땅에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었다.




양쪽 모두 처음 며칠간은 무척 생경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터와 갈라파고스는 마치 마력처럼 우리를 마구 몰입시켰다. 무엇보다 나에겐 여행자에게 무관심한 듯한 무심함이 참 좋았다.

 

유럽이 복잡한 역사와 현세기를 만들어낸 문명, 그리고 그 결과물인 화려한 유적으로 우릴 은근히 부담스럽고, 피곤하게 만든다면 이스터와 갈라파고스는 미각을 아둔하게 하는 조미료 대신 본래 원재료에 충실한 참으로 소박하고 정감 어린 밥상 같다는 느낌이었다.

 

이스터의 많은 모아이 석상들은 아직 복원되지 못한 채 해변과 초원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전혀 안타깝게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모습이 이스터의 미스터리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갈라파고스에서는 예년보다 높은 기온 탓에 갈라파고스의 인기스타인 빨간 발과 파란 발 부비새, 그리고 빨간 목주머니가 인상적인 대군함새를 기대만큼 많이 볼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거대한 코끼리 거북이와 화려한 색상의 이구아나, 장난꾸러기 같이 너무 귀여운 바다사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곳에선 인간만이 유일한 이질적인 존재였다.

 

사실 이 두 곳은 드넓은 태평양에 비해 티끌같이 작은 섬이다. 하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엄청났다.

 

매화향을 박비향(撲鼻香)이라 한다. 코를 찌르는 향기라는 뜻이다. 이스터와 갈라파고스의 생경하지만 원색적이었던 매력은 이 꽃샘추위속의 매화향처럼 두고두고 나의 기억을 찔러댈 것 같다.

                                                                                                                                                           [성순호]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