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3. 7. 12. 06:00

 

 

벌써 오래된 일이지만 세계 최고의 호텔이라는 두바이의 버즈 알 아랍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처음엔 차 한 잔 마실 생각이었는데 호텔 입장료만 70달러였다. 입장료를 내느니 차라리 식사를 하자는 생각으로 알아본 결과 250달러가 최소한의 식사 금액이었다.

 

드디어 버즈 알 아랍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날, 우리 돈으로 30만원에 해당하는 식사인 만큼 큰 기대를 갖고 호텔을 찾았다. 우리 일행들도 나름대로 기대가 컸던지 옷차림부터 잔뜩 멋을 부린 모습이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날의 저녁식사는 최악이었다. 3코스의 요리를 먹는 데만 3시간 반이 걸렸다. 우리 일행들은 졸음과 사투를 벌여야 했고 식당 분위기에 맞추느라 함부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정말이지 고문도 그런 고문이 없었다.

 

그렇다고 식사가 특별히 맛있지도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식당에서 저녁 만찬을 즐기려면 보통 1인당 500달러에서 1,000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우리는 세계에서 모여든 부호들 틈에 끼어 형편없는 싸구려 음식을 시켜놓고 잔뜩 폼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돈쓰고 초라해진, 정말 대실패였다.

 

 

 

 

 

 

지난 5월, 스페인 북부 여행을 하면서 북부 대서양 변의 휴양도시인 산 세바스티안을 찾아갔다. 유럽인들에게 산 세바스티안을 왜 가느냐고 물으면 첫 번째 대답이 ‘먹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만큼 미각의 도시이자 소문난 맛집이 즐비한 곳이다. 우리들 또한 그 먹기에 동참하여 반나절을 먹는 일에 투자하기로 하고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스타평점을 받은 식당들 중 ‘바스크 전통 음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거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칭송을 받는 주방장의 추천요리 7코스를 예약했다.

 

미리 예고했던 터라 배를 비워둔 채로 오후 1시 반부터 식사가 시작되었다. 애피타이저를 필두로 실제로는 9코스가 차례로 나왔다. 첫 요리가 나왔을 때 우리 일행들 모두 매우 신중하게 맛을 음미하는 것 같았다. 맛에 대한 평가도 활발히 진행됐다.

 

그런데 5-6개 코스가 진행되었을 즈음엔 배도 부를 뿐만 아니라 식사 진행 속도가 너무 느려서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내가 미식가가 아니어서 일까? 배가 부르니 그 맛이 그 맛처럼 느껴져 이 정성스런 요리에 고추장을 살짝 발라먹으면 좋겠다는(주방장이 알면 화를 벌컥 내겠지만) 생각까지 들었다. 제일 중요한 메인요리인 비둘기 고기는 거의 날것으로 나와 절반 이상의 일행들은 손도 대지 못했다. 아까웠다. 결국 이 날의 점심식사는 오후 5시 반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2시간 뒤 시내로 나갔다. 산 세바스티안에 와서 핀초스를 먹지 않는 것은 이 도시에 대한 모욕이다.

 

핀초스바는 낮의 우아한 식당과는 완전히 달랐다. 진열된 음식을 골라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먹어야 하는 그야말로 서민적인 음식점이다. 배가 불러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이것저것 고르다보니 그 오묘한 맛에 끌려 자꾸만 손이 갔다. 낮에 갔던 그 유명한 식당보다 훨씬 더 맛이 좋았다. 배가 차서 더 이상 들어갈 공간이 없음이 아쉬울 뿐이었다.

 

여행 중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유명하다는 식당 한 두 군데는 꼭 일정에 삽입하고, 각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을 반드시 맛보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다보니 제법 좋다는 고급식당도 많이 가보았다.

 

하지만 내 기억에 남는 ‘맛들’은 그런 레스토랑들이 아니다. 바라나시 강변의 짜이, 이스탄불 부둣가 가판대의 고등어 샌드위치, 프랑스의 크레페, 중국 야시장의 양꼬치 등이 입에 침이 고이게 만드는 메뉴들이다.

 

내 입이 촌스러워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버즈 알 아랍 호텔이라든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9코스 메뉴보다는 중동지역의 화덕에서 갓 구워낸 따끈한 빵 한 조각이 난 훨씬 더 그립다.

 

이런 느낌은 테마세이투어의 프로그램에도 가급적 최대한 적용할 생각이다. 그야말로 맛 대 맛이다.

                                                                                                                                                          

 

                                                                                                                                                          [마경찬]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