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3. 5. 29. 06:00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피천득, 오월-

 

 



4월 초, 11명의 손님을 모시고 조촐히 다녀온 터키 여행. 한적한 라우디게아에서 우리나라 봄과 똑 닮은 터키를 만났다. 초대 7대교회의 터가 남아있어 고대유적지로 불리지만 발굴 작업 중인 몇몇 유적이 아니라면 아마도 이곳은 동화 속 정원이라 해도 좋았을 것이다.

 

그 드넓은 벌판을 우린 꽃에 취하고, 봄바람에 취해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꼬박 2시간도 넘게 피곤한 줄도 모르고 걸어 다녔다. 이름 모를 노오란 야생화가 지천으로 핀 이 벌판을 걷는 것은 힘들기는커녕 숨만 쉬고 있어도 행복했다. 이 행복의 벌판에 우리뿐이라는 것이 살짝 아쉽기도 했다.

 

“이렇게 좋을 때 우리 여행자들은 다 뭐하는지 모르겠어요.’ 라는 무심의 한마디에 ”가을씨, 지금은 한국도 너무 좋잖아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맞다. 꽃피는 봄은 우리나라도, 지구상의 어딜 가도 너무 좋다. 말해 무엇할까.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 봄인 것을….

 

벌써 여름을 향해 달음질치고 있는 5월,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이 정말 다 가기 전에 어디라도 좋으니 길을 나서 보시길!

                                                                                                                                                        [권가을]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