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3. 6. 1. 06:00

 

정신없이 바쁠 5월을 앞둔 이른 휴가. 친구와 7일간의 발리 여행을 급하게 계획했다. 당연히 여행사 직원인 내가 여행준비를 도맡게 됐다.

 

사실 그동안은 주로 장기 배낭여행만 해왔기 때문에 세심한 계획은 세울 필요가 없었다. 대충 큰 토대만 세우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지내다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이고 또 단기 여행이다 보니 아무래도 준비를 꼼꼼하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발리에 대해 알아갈수록 하고 싶은 것도,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아졌다. 곧 나의 여행 일정표는 발리의 볼거리, 즐길거리, 맛집 등으로 빽빽하게 들어차기 시작했다. 현지 호텔, 현지 가이드와 일정을 상의하면 할수록 일정은 점점 더 늘어났다. 급기야 시간 단위는 물론 분 단위에도 해야할 일(?)이 있었다.

 

 



엇! 근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어느 순간, 난 견적요청을 받은 여행사 직원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깨달았다. 마땅히 즐겁고 설레어야할 여행 준비를 마치 일을 하듯이 숨 막히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여행사도 이렇게 빡빡하게 하지 않는데 난 나도 모르게 한없는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이게 대체 휴가 여행인지 친구를 모시고 가는 패키지여행인지….

 

난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자고로 비워야 채울 수 있는 것인데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난 마구 채우고 있었다. 여행의 돌발 상황을 즐겨왔던 나인데, 이렇게 귀중한 휴가를 일처럼 진행할 수는 없었다. “그래, 다시 또 오면 된다.”는 대범한 생각으로 그저 즐기기로 마음먹고 세부 일정 세우기 따위는 그만 두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난 발리에서도 여유를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여행 내내 나는 마치 인솔자처럼 친구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아무렇지도 않은 가벼운 농담들을 여행 일정에 대한 호평과 불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직업병이구나!. 여행사에 근무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러다보니 돌아오는 비행이 무척 피곤했다. 다음부턴 친구와 함께 하는 짧은 여행은 그냥 여행사의 단체여행상품을 이용해야 할까 보다.

                                                                                                                                                          [이은정]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