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3. 7. 26. 06:00

 

 

난 지독한 애연가였다.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담배를 가까이 하면서 단 한 번도 끊어야겠다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끊을 시도도 해보지 않았다. 특히 여행길에는 여권만큼이나 중요한 필수품으로 담배를 꼭 챙겨갔다. 멋진 장소에서는 담배를 피워 물어야 제대로 느낌이 온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갈수록 담배를 핀다는 사실이 구차하다 못해 비참한 느낌까지 들 지경이 됐다.

 

전 세계 대부분의 호텔은 이미 전 객실이 금연이다. 테이블에 쓰인 글도 협조를 구하는 문구 대신 벌금을 적시한 강력한 경고문으로 변했다. 뿐만 아니라 공항의 면세구역에도 흡연실이 사라져 간다. 설사 있다하더라도 흡연실인지 너구리 잡는 굴인지 헷갈릴 정도로 엉망인 경우가 많다. 마치 흡연자는 대우해줄 가치조차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러한 차별과 억압(?) 속에서도 난 꿋꿋하게 담배사랑을 이어갔다. 물론 이에 따른 대가도 여러 번 치렀다.

 

캐나다의 옐로우나이프로 오로라를 보러 갔을 때다. 영하 30도의 혹독한 추위는 방한복을 갖춰 입지 않으면 단 5분도 밖에 서있기 힘들 정도였다. 그야말로 세상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기세였다.

 

게다가 객실의 모든 창문은 보온을 위해 3중으로 막혀있어 담배를 피기 위해서는 당연히 호텔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대충 입고 나가면 얼어 죽을 것 같은 날씨인지라 담배 한 대 피우기 위해 옷을 세겹, 네겹 껴입고 두툼한 방한화를 신고 나가야 했다. 이 날 저녁에 이 번거로운 짓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사실 그땐 내가 좀 한심하게 생각되긴 했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금연정책을 시행하는 나라는 아이슬란드다. 현재 의회에서 토론중인 금연법안을 봐도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담배판매를 전면 금지하고, 꼭 담배를 피우고 싶은 사람은 의사로부터 ‘담배를 펴도 해롭지 않다’는 처방전을 받아야만 살 수 있게 하자는 법안이다.

 

바로 이 아이슬란드에서도 아픔을 겪었다.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세워진 호텔은 벽 한 면이 통창으로 되어 있어서 창문만 활짝 열면 실내와 밖이 구별이 없을 정도였다. 당연히 창밖에 몸을 내밀고 여유 있게 담배를 즐겼다. 완벽하게 환기도 이루어졌고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 체크아웃할 때 내 방에 흡연에 따른 벌금이 부과되어 있었다. 무려 40만원. 사전 경고도 없었고, 금연실이라는 표시도 없었지만 변명 한마디 못하고 고스란히 벌금을 내야만 했다.

 

그래도 담배 끊을 생각은 없었다. 속상하다는 핑계로 그날 두 배는 더 피웠다.

 

이런 내 흡연생활에도 위기가 왔다.

 

 

 

 

 

작년 11월 뉴질랜드에 갔을 때다. 밀포드사운드 1박2일 크루즈 배에 올라타자마자 흡연 가능여부부터 체크했다. 다행히 배 후미에 커다란 재떨이가 놓여있었다. 선상에서 유일한 흡연 허용장소였다. 밤사이 뻔질나게 이곳을 들락거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식사 후 또 흡연 장소에 갔다가 난 멍해졌다. 재떨이에 버려진 담배꽁초는 내 것 뿐이었다. 80여명이 탑승한 이 배안에서 흡연자는 오직 나 하나였던 것이다. 순간 내가 유령이 된 기분이었다. 어제 모두가 잠든 밤, 나 혼자 이 배안을 배회했던 셈이다. 고작 담배 피우러….

 

담배 끊은 지 5개월째가 됐다.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이젠 공항에서 흡연실을 찾아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고 창문 없는 호텔방에서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어졌다. 그러다보니 여행 중에 한 층 더 여유가 생겼다.

 

세계 어디를 가나 점점 흡연자를 포위하고 옥죄어 오는 느낌이다. 이 추세라면 흡연이 여행의 큰 장애요소가 될 것 같다. 흡연자들에겐 참 슬픈 세상이다.

                                                                                                                                                         [마경찬]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