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3. 7. 5. 06:00

 

 

야근을 마치고 서둘러 퇴근하던 밤늦은 광화문 거리. 그 한 모퉁이에 붙어 있는 전시회 팸플릿 문구가 나를 사로잡았다. ‘보이지 않는 이들의 시각’ 이라는 전시회이다. 그 주제를 보는 순간, 며칠 전 끝마치고 온 그리스 에게해 여행의 진한 감동이 다시금 밀려왔다.

 

그리스 출장은 세 번째지만 이번처럼 그리스 산하를 꼼꼼하게 여행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각 여행지에서 만났던 고대 유적과 유물이 정말 기대 이상으로 대단했다. 그리스에서는 천 년이 되지 않은 돌들은 돌베개로도 쓰지 않는다 했던가?

 

 

 

 

 

 

크레타 섬에서의 고고학박물관과 미궁이라 불리는 크노소스 궁전은 물론이요, 아테네를 비롯한 거의 모든 도시(심지어는 섬 전체에 낭만이 줄줄 흐르던 산토리니에서도)의 박물관에서 엄청난 규모의 유적과 마주했다. 현대 드라마속의 식스팩을 가진 배우들보다 더 근사한 육체를 가지고 있던 몇 천 년 전의 크로스(청년) 조각상들. 그 조각상들의 허벅지와 팔뚝의 근육들은 돌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사실감과 역동성을 지니고 있었다. 크리터라고 하는 도기, 자기들과 장신구들은 어떠한가? 우아함과 세련미의 극치로 몇 천 년 전의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던 고대 그리스의 유적과 유물을 뒤로하고, 우리는 트레킹을 하기 위해 자고리 산간 마을로 이동하였다.

 

자고리의 비코스 협곡은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이라는 기네스 기록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그 기록에 걸맞게 비코스는 아찔한 깊이를 자랑하는 비경이었다. 그러나 그 깊은 협곡은 마치 그리스 신화의 하데스가 있는 지하세계처럼 깊고도 아득해 보였다.

 

 

 

 

 

오스만투르크 지배 시절, 터키 군에 의해 등 떠밀려 아득한 절벽으로 떨어져 죽어야 했던 그리스인들의 고통 어린 수난, 어찌해볼 수 없는 궁핍한 가난에 노인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 독초를 먹고 자결했던 그 피 울음 나는 절규, 그리스 정교를 지키기 위해 눈알이 뽑히고 살가죽이 벗겨지는 참혹한 고문을 감내해야만 했던 종교적인 박해…. 아름다운 섬 미코노스 조차도 해안지역은 해적의 잦은 침입 때문에 바다를 좋아하는 그리스인들임에도 섬의 내륙 깊숙한 곳으로 이주해야 했다.

 

어디든 카메라를 들이대면 엽서가 되는 아름다운 섬과 평화로운 산간마을, 그리고 뛰어난 색감의 종교적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아프지 않은 역사가 없었다. 마치 아름다운 유화 속에 덧칠되어 숨겨진 붓의 그림자처럼 그리스의 산하와 사람들의 소박한 미소 속엔 알 듯 모를 듯한 슬픔이 배어 있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찬란한 태양이 가득한 그리스 땅에서, 눈이 시릴 만큼 파란 지붕의 에게해 섬에서, 너와집 지붕이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는 산골마을에서 깨달았다. 찬란한 유물과 유적으로 덧칠되었던 것을 걷어 내고나니, 피울음으로 점철된 수난의 역사를 디디고 선 그리스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 오랜 질곡의 모진 세월을 이겨낸 그 저력으로 이번 위기도 무탈히 넘길 것임을 믿는다.

 

                                                                                                                                                            [성순호]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