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3. 8. 7. 06:00

 

 

해발 3,200m의 청정고원에 자리 잡은 청해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거칠기는 했지만 청량감이 있었다. 그 바람을 타고 오색의 티베트 타르초가 나부끼는 호변에는 벌써 유채꽃이 흐드러져 있었다.

 

중국 청해성과 감수성, 내몽골은 찾는 이번 여행의 큰 테마는 ‘꽃과 사막’이었다.

 

이 어울리지 않는 두 풍광에 대한 기대치는 사람마다 제각각이었지만 난 유채꽃에 더 마음이 끌렸다. 사실 난 꽃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최근 들어 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집에 화초를 들여놓을 때마다 ‘먹지도 못할 풀을 왜 자꾸 집에 들여놓느냐’고 타박을 했던 내가 꽃망울을 터트리는 모습에 감탄하는 일이 잦아졌으니 말이다.

 

 

 

 

 

 

청해호를 떠나 문원에 접어들자마자 기대했던 대로 세상이 노랗게 변해있었다. 샛노란 유채꽃들은 세상을 완전히 뒤덮을 기세로 맹렬하게 피어있어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한참을 달려도 유채꽃으로 이루어진 노란 지평선이 계속되었고, 멀리 산골짜기의 조그만 공간도 어김없이 노란물결이 가득했다.

 

게다가 노란 유채밭과 초록의 밀밭이 모자이크식으로 배열되어 경작되는 지역은 정말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왔다.

 

이틀 동안 꽃에 취해 지냈다. 오직 꽃 때문에 이렇게 행복하고 이렇게 흥분되어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청춘이 끝나야 꽃이 보인다고 하더니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나 보다.

 

다음엔 감숙성을 거쳐 내몽골로 들어갔다. 어느덧 화려했던 꽃도 사라졌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던 양과 야크떼, 광활한 초원도 사라졌다. 그 대신 이 악물고 모진 세월을 버텨왔을 잡초들이 뜨거운 태양아래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나마 모든 생명체가 사라져갈 무렵 거대한 모래언덕이 앞을 가로막았다. 바로 그 자리에 지프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내 심장에도 불길이 당겨졌다. 바단지린 사막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먼지를 날리며 거침없이 달렸다. 정말 통쾌하고 후련한 질주였다. 달리고 또 달려도 모래능선은 끝이 없었다.

 

 

 

 

 

사막은 황량하고 삭막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빈 공간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면 쓸쓸함이 가슴에 침잠되어 이내 평화로움으로 바뀌는 곳이 곧 사막이다.

 

바단지린 사막은 지금껏 내가 가본 사막 중에 가장 크고 많은 사구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사구 사이에 맑은 호수가 100여개나 자리 잡고 있으니 아름다움에 경이로움이 더해져 최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날 새벽엔 비가 내렸다. 그리고 빗속의 사막 질주가 시작됐다. 좀처럼 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더욱 높아지고 가파른 사구를 넘나드느라 지프차들은 타이어가 터지고 엔진과열로 멈춰서는 등 악전고투를 거듭했다.

 

그러던 중 높은 사구에 날 내려준 1호 지프차는 고장 난 차들을 구하러 되돌아가더니 소식이 없다. 어쩔 수 없이 광활한 사막의 한복판에 한 점이 되어 오랫동안 서있었다. 순간 적막함에 갇혀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맞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한동안 촉촉이 비에 젖은 사막을 바라보다 혼자 배시시 웃고 말았다. 청춘이 끝나야 꽃이 보인다고? 흠…. 역시 나에겐 아직 꽃보다 사막이다. 그러니 난 아직도 청춘이다.

 

                                                                                                                                                          [마경찬]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