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3. 10. 2. 06:00

 

여름휴가로 필리핀의 보라카이를 다녀왔다. 호텔과 항공편만 덜렁 예약해서 무작정 떠난 속전속결 여행이었다.

 

8월 초부터 손꼽아 기다리던 출국일. 얼마나 설레던지 비행 출발이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 가량 미뤄졌음에도 불만 따위는 없었다. 출장을 다니다보면 항공편 딜레이쯤은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나흘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전혀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열악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보라카이 칼리보 공항. 귀국편 비행기가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각이라 몸이 많이 고단했다. 주위에 있는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보딩 시작 시간인 밤 11시40분이 되어도 안내방송은커녕 항공사 직원조차 보이지 않았다. 게이트에도 별다른 표시가 되어있지 않아 공항은 그야말로 공황상태였다. 비행기가 너무 지연되자 이 게이트가 맞는지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기 시작했고, 피곤에 지친 어린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무려 1시간 30분여가 지나서야 내가 탈 필리핀의 저가항공사인 제스트에어의 직원들이 무슨 일이 있냐는 듯이 유유히 모습을 드러냈다. 기다림에 지친 손님들이 승무원에게 언성을 높이는 모습도 보였으나, 승무원들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양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그만이었다.

 

그리고 귀국해서 다음날 아침뉴스를 보는데 정말 놀라 자빠질 뻔 했다. 내가 타고 온 제스트항공이 안전상의 이유로 운항이 금지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탄 비행기가 어제 자정타임이니까 정확히 24시간 후 동일 항공편부터 운항금지가 된 것이다. 그 탓에 한국으로 돌아오려던 많은 관광객들이 현지에 발이 묶여 버렸다. 하루만 늦었어도 나 역시 지금쯤 그 열악한 보라카이 공항에서 속절없이 노숙자신세가 되었을 거란 생각을 하니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니 항공사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대체항공편이 곧 뜰 것이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승객들을 공항에 가둬두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 공항엔 제스트항공 직원이 한명도 없었다고 피해자들은 하소연했다. 심지어 그날이 주말인지라, 제스트항공 사무실도 전화를 받지 않아 더 여행객들의 마음을 초조하게 했다는 말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런 일은 내가 출장을 맡게 된 추석 동유럽 여행에서도 일어났다. 프라하-부다페스트 구간을 운항하는 체코항공에서다. 예약과 발권까지 모두 끝난 항공편이 갑작스레 운항 취소가 되었다. 하반기 스케줄 조정에 의해 그 항공편을 없앴다는 것이다. 더 기막힌 것은 이래놓고 연락한 통 없다는 것이다. 만약 중간에 체크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프라하에서나 그 항공편이 없어진 걸 알게 되었을 것이다.

 

강하게 항의를 하고, 대체편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그들의 대답은 NO였다. 결국 우리 가 스케줄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이런 서비스 마인드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몇몇 항공사의 횡포에 여행자들의 소중한 여행이 망쳐져야 하는지 답답할 뿐이다.

                                                                                                                                                           [권가을]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