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4. 2. 11. 06:00

 


경제수준이 떨어지는 나라에 가면 버스기사와 함께 조수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조수는 기사에게 철저히 예속된 상태로 세차나 잔심부름, 짐 싣고 내리기 등 온갖 잡일을 거드는 역할을 한다. 보수라고 해봐야 식사를 제공받고 가끔 용돈 정도를 받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다보니 여행객들에게도 조수는 존재감이 거의 없다.

 

지난 스리랑카 여행 때도 버스기사와 함께 인상 좋아 보이는 조수가 우리를 맞이했다. 그런데 나는 여행 기간 내내 버스기사와 조수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을 뿐만 아니라 작은 깨달음도 얻게 되었다.

 

버스 주인이자 기사인 안토니오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버스 전면 유리창 상단에 부착된 커다란 예수님과 성모님 사진이 이를 대변했다. 이름인 ‘안토니오’도 최근에 기독교식으로 개명한 것이라고 한다. 반면에 조수 후쌀은 불상만 보면 꼭 합장을 하고 지나가는 전형적인 불교도다. 안토니오와 후쌀, 기독교인 기사와 불교도 조수의 불완전한 조합에 핸들을 맡기고 우리들의 스리랑카 여행은 시작되었다.

 

 

 

 

 

 

버스에 올라타자 조수석 바로 앞에 정성스레 꽃으로 장식한 작은 불상이 놓여있었다. 우리 정서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기독교도 입장에서 우상과도 같은 불상을 자기 버스 안에 올려놓는 것을 용인한다? 그것도 머슴과도 같은 존재인 조수가 올려놓은 것을….

 

매일 아침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버스 밖에서는 안토니오 기사가 유리창 전면에 붙은 예수님과 성모님을 바라보며 기도를 올리고, 버스 안에서는 후쌀 조수가 불상을 장식하며 기도를 올린 후 시동을 걸었다. 여하튼 우리는 예수님과 성모님, 부처님의 합동 보호를 받으며 험한 길을 달리는 것이니 안전은 확실히 보장된 셈이었다.

 

안토니오의 후쌀에 대한 배려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도로 옆에 꽤나 의미 있는 불교사원이 나타나면 안토니오는 여지없이 버스를 세웠다. 그러면 후쌀이 뛰어내려 재빨리 불공을 드리고 불전함에 동전을 넣고는 돌아왔다. 이런 장면이 몇 번 반복되었지만 우리 일행들 중 그 누구도 왜 시간을 지체하느냐고 불평하는 분이 없었다. 분명 우리 일행 중에도 기독교 신자가 있었을 터이다.

 

안토니오로부터 배려를 받은 조수 후쌀은 우리들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한 봉사를 했다. 매일 아침, 버스가 출발하면 후쌀은 새벽에 따온 꽃 한 송이씩을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오늘은 어떤 꽃을 받을까 하는 기대감은 하나의 작은 행복이었다. 또한 해변을 걷다 돌아오면 구두솔과 물병을 들고 우리 일행들의 신발을 일일이 털어주기도 했다.

 

 

 

 

 

 

한번은 담불라의 석굴사원을 보던 중 폭우를 만나 오도 가도 못한 채 발이 묶이고 말았다. 그런데 후쌀이 우산 10여 개를 들고 20여분이나 걸리는 가파른 언덕을 뛰어 올라왔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땀인지 빗물인지 모르겠지만 흠뻑 젖은 얼굴에 가득한 착하고 착한 미소가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여행 중에 맞이한 크리스마스 날 아침, 버스에 오르려던 우리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후쌀이 버스 전체를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해 놓은 것이다. 감동이었다. 무엇보다 잠 못 자고 새벽부터 일어나 버스를 장식했을 후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마두강가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날, 안토니오와 후쌀에게 식탁에 같이 앉아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마침 메뉴도 랍스터였다. 그들에게는 이런 제안이 파격이었나 보다.

 

몇 번 거절을 하다가 식사를 마친 후 후쌀은 자기가 아는 한국말이 딱 하나 있다고 했다. 당연히 ‘안녕하세요’ 또는 ‘감사합니다’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사랑합니다’였다. 사랑합니다….

                                                                                                                                                           [마경찬]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