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4. 4. 25. 06:00

 

 

한참을 달려도 인적을 찾을 수 없었다. 쌀쌀한 날씨 탓인지 스산함마저 느껴지는 황량한 벌판에는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누런 풀들이 출렁거리며 쓸쓸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그 벌판을 가르며 한줄기 길이 이어져 있었다. 코카서스 그루지야의 다비드 가레자 수도원으로 가는 길이다.

 

민가와는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있는 수도원이다 보니 찾아가는 길도 멀기만 했다. 예전에는 다비드 가레자 수도원을 가기 위해서는 이 황량하고 먼 길을 터벅터벅 걸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점점 거세지는 바람에 더욱 격렬한 몸짓으로 맞서는 갈대풀들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리곤 어느 순간부터 내 눈과 마음은 중세시대로 돌아가 이 길을 따라 외로이 걷고 있는 수도자의 뒷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세속적인 삶을 버리고 수도자의 삶을 살고자 다비드 가레자 수도원을 찾아가는 모습이었다.

 

이제 수도원으로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올 수 있는 길, 세속인으로서의 마지막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외로운 모습의 저 수도자는 무슨 상념에 젖어 이 길을 걷는 것일까? 세속의 삶을 버려야만 하는 운명에 통한의 아픔을 안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제야 비로소 신에게 귀의한다는 환희에 벅찬 감정을 안고 있는 것일까? 세속에 대한 미련은 정녕 없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상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쓸쓸한 외길을 걷는 수도자가 되어 아프고 쓸쓸하고 애잔한 감정을 주체하기 어렵게 되었다. 자칫 바람과 누런 풀들만 존재하는 평범한 모습으로 기억될 이 길이 내겐 너무나 감동적인 최고의 여행지로 각색되는 순간이었다.

 

내게 있어서 인도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다가오는 장면은 타지마할이나 갠지스 강이 아니라 우연히 마주친, 길거리 가판대에 앉아 있던 중년남자의 휑한 눈빛이다. 진열된 상품이라고 해봐야 먼지 쌓인 사탕과 싸구려 담배 몇 개가 고작이어서 몽땅 다 산다고 해도 채 5만원도 안될 것 같았다. 하루 온종일 저곳에 앉아 얼마나 파는지, 저 남자를 기다리는 식솔은 몇 명이나 될지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어둠이 내린 후 귀가하는 이 남자의 축 늘어진 어깨가 보이는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상상을 하는 와중에 수차례 이 남자의 휑한 눈과 마주쳤다. 이후로도 인도에 가면 의례히 그 때 그 남자는 지금도 그 자리에 앉아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먼저 든다.

 

 

 

 

여행의 절반은 상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여행을 떠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절반이고 상상 속에 보이는 것이 나머지 절반이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모든 장면의 실체에 내 상상력이 더해져야만 여행이 풍요로워진다. 차창밖에 스치듯 지나가는 마을에서도 내가 이 마을에 태어났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라는 상상이 더해지면 의미 있는 마을로 변하게 된다.

 

콜로세움에 들어가서는 검투사의 핏발선 눈동자가 보이고 관객들의 열광하는 아우성소리가 들려야 한다. 몽고 초원위에 서서는 질풍처럼 달려오는 칭기즈칸 부대의 성난 말발굽소리를 들어야 하고, 아를의 골목길을 걸을 때면 고독과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고흐의 애달픈 심정이 이입되어야 한다.

 

확실히 여행의 절반은 상상으로 구성된다. 여행 중에 수시로 단체로 여행을 떠나왔지만 마치 혼자 온 것 같은 마음으로 여행하자고 당부 드리곤 하는 이유도 여행의 절반인 상상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마경찬]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