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4. 4. 2. 06:00

 


지난 1월, 중남미 여행에서 칠레 파타고니아의 토레스 델 파이네를 다시 찾았다.

 

인솔자인 나는 가기 전부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첫 번째는 변덕이 심한 날씨로 진면목을 보기 어려울까봐, 둘째는 지난 2011년의 대형 산불로 쿠르노스 전망대 가는 길이 망가졌을까봐 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드디어 쿠르노스 전망대에 오르는 날, 분명 어제 보다는 날씨가 더 좋을 것이라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먹구름이 잔뜩 끼어 금방이라도 한바탕 퍼부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그동안 수없이 험난한 여행길을 떠났었지만 이날처럼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은 처음이었다. 시속 80km, 세상을 다 날려버릴 듯이 불어대는 바람은 중심을 잡고 서기도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곳까지 와서 그냥 돌아설 수는 없었다. 우리 일행들은 만반의 준비를 한 후, 세찬 바람을 뚫고 페호에 호수 기슭으로 나있는 산책로를 따라 짧은 트레킹을 시작했다.

 

살토 그란데 폭포를 지나자 저 멀리 검게 그을린 나뭇가지가 을씨년스럽게 나뒹굴고 있었고, 때마침 먹구름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빗방울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지만 그래도 걸었다.

 

그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책길 중간 중간 만난 호수의 물빛은 쪽빛, 옥빛, 에메랄드빛 등 온갖 푸른빛을 모두 담고 있었고, 호수를 에워싼 산봉우리들은 최고의 절경이었다.

 

그리고 화재의 흔적은 더 이상 우울한 색채로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괴이한 분위기가 옥빛 물색과 어우러져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태워버린 산불이었지만 잿빛 땅에서는 용케도 새싹이 돋아나고 이름 모를 꽃들도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 토레스 델 파이네의 봉우리가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다시 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의 칼라파테로 되돌아오는 날, 차창 밖을 보면서 나는 피식 웃었다. 온갖 걱정을 한가득 안고 갔던 이 길을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불이 났어도 비바람이 몰아쳤어도 넉넉한 마음으로 대자연을 담아낸 우리일행이 있어 아름답고 행복했던 토레스 델 파이네였다.

                                                                                                                                                            [서경미]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