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4. 4. 11. 06:00

 


교통 법규도 신호체계도 잘 갖춰지지 않은 이곳은 무질서가 곧 질서예요. 이 무질서한 곳에서 혼자 질서를 지키려 하면 더 힘들어요. 그냥 그들 속에 묻혀서 함께 어지러이 움직이다보면 놀랍게도 그 안에서 새로운 질서가 생겨 오히려 편하게 되죠.”

 

베트남 여행 중 가이드에게 들었던 인상적인 멘트이다. 처음 하노이를 둘러 볼 때엔 이런 곳에서 도대체 어떻게 사나 싶었다. 버스가 머리를 들이밀 틈도 없이 오토바이 부대가 온 도로를 장악해 20분이면 충분한 길을 버스에서 1시간은 갇혀 있기가 일쑤였다.

 

그 뿐인가, 하롱베이까지 가는 길에선 맨 앞에 앉아 어찌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좁은 2차선에서 앞에 있는 차가 조금이라도 속력을 줄이면 라이트를 깜빡이고 경적을 쉼 없이 울려대며 당장 비키라는 무언의 협박을 마구 날렸다.

 

 

 

 

 

앞 차가 안 비켜줄 경우 기사에게 포기란 결코 없었다. 반대차선에 마주 오는 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달려 반드시 앞 차를 추월하고야 말았다. 그 길가엔 차뿐 아니라 사람도 소도 건너 다녔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보지 않게 빨리 잠이나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할 정도로 도로는 정말 무질서 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결코 고성이 오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옆 차선을 침범해 추월하는 사람도, 마주보고 달려오던 반대편 차선의 차도, 정신없이 차들이 오가는 도로를 마구잡이로 건너는 사람의 얼굴에서도 전혀 초조함이나 불안함은 찾을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무질서 속의 질서라는 걸까.. 피차일반 모두가 법을 위반하고 있으니 누굴 탓할 필요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저 서로가 다치지 않을 만큼 열심히 무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길에서 어지러움을 느낀 것은 이방인인 우리뿐이었던 것 같다. 4시간여를 곡예 운전을 한 버스기사도, 어린 조수도 별일 없었다는 듯 하롱베이에 도착하자마자 미소를 머금은 채 굿나잇!’을 외치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런데 묘하게도 베트남에서 돌아온 지 몇 달이 지난 지금, 난 그곳이 자꾸만 그리워진다. 지극히도 내 기준에 맞춰 그들의 자연스러운 삶을 무질서의 장으로 간주해 버린 것은 혹 아니었을까. 오히려 그들의 삶은 각각의 보이지 않는 배려 속에서 더 여유로운 것은 아닐까.

 

출근길에 꼬리 물기가 난무하는 도로를 볼 때마다, 그래서 이 도로 위에 있는 불특정 다수들에 화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질서속의 무질서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게 맞는지, 무질서속의 질서에 순응하며 여유롭게 사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곤 하는 요즘이다.                                       [권가을]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