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4. 5. 20. 06:00

 

오랜 만에 모로코를 다녀왔다. 모로코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도시가 어디일까? 아마도 현지인들도 길을 잃는다는 엄청난 미로의 도시 페스일 것이다.

 

아니면 단지 영화 제목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유명세를 타는 카사블랑카, 또는 왠지 신비한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은 도시 마라케쉬 정도가 모로코를 대표하는 도시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인 곳은 이들 대도시가 아니었다. 메르조우가에서 만난 사하라 사막에서의 하룻밤도 무척이나 낭만적이고 행복했던 순간이었지만 이 또한 뒷순위로 밀렸다. 우리 일행들을 가장 매료 시킨 곳은 다름 아닌 쉐프샤우엔이었다.

 

언젠가 유럽여행의 참 매력은 파리, 런던, 로마 등의 대도시가 아니라 작은 마을의 뒷골목에 있다.’라는 취지의 글을 소식지에 올린 바 있다. 바로 작은 마을의 뒷골목이 주는 매력은 아랍권인 모로코에도 해당되었다.




인구
35,000명의 작은 동네 쉐프샤우엔은 마을 입구부터 무언가에 홀린 듯 약간의 흥분상태에 빠져들게 했다. 온 마을이 예쁜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문도 담벼락도, 그리고 지붕뿐만 아니라 심지어 골목길의 바닥까지 온통 파란색이었다. 스머프가 나오는 동화속의 세계에 빠져든 것 같기도 하고, 파란 요정의 마법에 걸려 하루아침에 세상이 파랗게 변해버린 것 같기도 했다.

 

사실 쉐프샤우엔은 배낭여행객들에 의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진 마을이고 단체가 방문하기는 쉽지 않은 곳이다. 우리들 또한 점심식사 이후 다음날 아침에 만나기로 하고 모두가 개인 여행자가 되어 골목길을 뒤지고 다녔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파란색의 골목길들은 정말 예뻤다. 심지어 골목에 가득한 기념품 상점들도 앙증맞게 예뻤다. 게다가 우리가 하루를 의탁한 방 14개짜리 작은 호텔은 이틀 후 모로코 왕비와 공주가 투숙할 정도로 특별한 장소였다. 아마도 우리 일행들에게 있어 모로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소는 바로 이 쉐프샤우엔이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모로코에는 파란마을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얀마을도 있으니 바로 물레이 이드리스다. 파란마을 쉐프샤우엔은 그나마 여행자들에게 제법 알려져 있지만 하얀마을 물레이 이드리스는 관광지가 아니다. 모하메드의 손자인 이드리스가 모로코 최초의 아랍계 왕조를 세운 장소로써 모로코인들의 성지순례지에 가깝다. 당연히 모로코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마을이기도 하다.




하얀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마을 전체의 전경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내부에는 특별한 것이 없는지라 가볍게 돌아볼 요량으로 골목길로 들어섰다. 예상대로 특별한 무엇이 있는 마을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을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서면서 점차 내 마음을 뒤흔드는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허름한 집과 빛바랜 대문들, 아무렇게나 늘어진 전선줄, 무표정한 사람들. 물레이 이드리스는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그 무거운 침묵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고스란히 내 가슴에 전이되었다. 그것은 내가 맡고 싶었던 모로코의 공기였다. 수 천 년 역사의 모로코엔 이런 공기가 흘러야 마땅했다. 골목길을 돌아설 때마다 발걸음을 멈추고 감격에 겨워했다. 돌아와서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이 마을에서 찍은 사진은 몇 장 되지 않았다. 그나마 찍어온 장면들도 별 볼품이 없었다. 하긴 그 어떤 카메라가 시간을 찍어낼 수 있을까?

 

같이한 일행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내게 있어서는 물레이 이드리스가 모로코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이었다.

 

깨끗하게 단장된 파란 마법의 세계 쉐프샤우엔은 예쁘고 경쾌하고 사랑스럽다. 반면에 퇴적된 세월을 힘겹게 이고 있는 물레이 이드리스는 상처투성이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꿋꿋하게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것만 같다. 쉐프샤우엔 vs 물레이 이드리스, 극단적으로 다른 색깔을 지닌 이 두 마을은 모로코 이미지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마경찬]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