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4. 7. 10. 06:00

 

이번에 터키 여행의 전 일정을 함께 한 현지 가이드 굑한(Gökhan, 터키어로 하늘의 신이라는 뜻)은 여러 의미에서 오래 기억될 친구이다.

 

여행 초반 굑한의 강렬한 첫인상 때문에 존재의 이유(?)를 물어오는 손님들도 계셨다. 하지만 서로를 알아갈 만큼의 시간이 지나자 굑한은 무더운 터키 여행에서 청량제 역할을 했다. 그는 적절한 타이밍에 정확한 한국어로 여행을 도왔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존재가 됐다.

 

순조롭던 터키 여행 5일째, 카파도키아에서 전통 공연을 보러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데 굑한이 씩씩대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갑자기 절교를 선언했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당황해하는 나에게 설명하기를 513일에 발생한 터키 탄광사고가 이틀이나 지났는데도 한국에서 아직 애도문을 보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기네 나라는 한국에 세월호 대참사가 발생하자마자 당일 서한을 보내 애도를 표했는데, ‘형제의 나라인 우리나라는 터키에 닥친 큰 악재에 아직 아무런 위로가 없다며 너무 서운하다는 표현이었다.

 

 

 

 

형제의 나라. 익히 알려진 대로 터키인들은 우리를 형제의 나라로 생각한다.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우리나라에서도 터키하면 떠오르는 수식어가 형제의 나라가 되었다.

 

현지에서 경험상 나의 느낌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터키를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그 이상으로 터키 사람들이 한국을 친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6.25전쟁 참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에티오피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6.25 당시 왕실친위대를 파병했던 에티오피아인들은 한국에 대하여 굉장한 친밀감을 갖고 있었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인 호의를 베풀곤 했다.

 

그리고 이러한 호의 뒤에는 대개 너는 우리나라를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이 따라왔다. 이럴 때마다 전후세대로 큰 공감대가 없는 나로서는 솔직히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당황스러웠다. “나도 너희들을 형제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 때 우리를 도와줘서 고마워.”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솔직하게 너희 나라를 잘 몰라 미안해라고 해야 할지 말이다.

 

터키에서의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섭섭하다는 굑한에게 터키에서 벌어진 비극을 위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터키와 한국의 인연을 바탕으로 서운하다는 부분에서는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참 어려웠다.

 

다행히 공연이 끝난 뒤, 절교를 선언했던 굑한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화해하자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한국 정부가 방금 전 공식 애도서한을 보내왔다는 것이다.

 

물론 굑한의 절교와 화해가 심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분히 장난끼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손을 내밀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형제의 나라라는 인식은 진지했던 게 틀림없어 보였다.

우리 정부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나로선 정말 난감할 뻔 했다. [이영미]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