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4. 8. 7. 06:00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이번 여행에서는 유독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5월 중순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봄꽃이 한창이었다.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의 화려한 꽃들부터 돌 길 사이사이 올라온 이름 모를 작은 꽃들과 돌담 구석에서 피어난 소박한 꽃들까지.

 

 

 

 

 

유독 이번 여행에는 꽃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으셨다. 꽃 이름에 해박한 손님도 계셨고, 화려한 큰 꽃들 보다는 무심코 지나치기 십상인 이름 모를 소소한 꽃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 분도 계셨다. 이렇게 같이 며칠을 보내고 나니 더 많은 분들이 꽃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거의 모두가 거리 곳곳에 피어난 꽃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르셨다.

 

평소에 나는 꽃을 보면 , 예쁘군!’ 하는 정도였다. 사실 희로애락을 겉으로 잘 표현하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다. 이게 인솔자로서는 결코 좋은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손님들과의 공감 능력이 인솔자에게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을 좋아하는 이 분위기에 나도 적극 동참해 보기로 했다. 사실 인위적인 노력이었다. 지만 점차 꽃의 이름을 듣고 배우고 진지하게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게 내 태도도 달라져 갔다. 단순히 꽃의 외형만을 보고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기까지의 과정까지 생각하면서 진지해져 갔던 것이다.

 

이번 여행의 대미를 장식한 꽃은 자카란다였다. 여행 후반 세비야에 입성하면서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린 오렌지나무 가로수를 예상했던 우리들의 눈앞에 보라색 길이 펼쳐졌다.

 

보라색 꽃이 가득한 가로수 길을 달리다니. 여행자들 모두 난생 처음 보는 풍경에 놀라워했다. 우리나라의 벚꽃처럼 순식간에 폈다가 지는 꽃이라고 했다. 운 좋게도 우리가 그 개화시기에 딱 맞춰 입성을 한 것이었다. 오묘한 보랏빛 자카란다의 행운은 포르투갈까지 이어졌다.

 

여행을 다니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은 나의 세계를 넓혀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의 시작은 항상 관심을 갖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이번 여행의 신세계는 꽃이었다. 꽃이 내 이름을 불러준 듯했다[이은정]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