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4. 9. 17. 06:00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7월 중순의 어느 오후, 폐허가 되어버린 수도원 도시 위를 걷고 있었다. 아일랜드의 중요한 기독교 성지인 글렌달록이다.

 

혹여나 마을 곳곳의 무덤을 밟을까 조심스럽게 걷다보니 거대한 라운드탑이 눈앞에 나타났다. 무려 30m 높이로 치솟은 압도적인 분위기의 탑이다. 종탑의 목적보단 감시탑이 주된 기능이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수많은 돌들을 쌓아올려 만든 원형탑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이 도시를 보호하려는 듯 철옹성 같이 단단해 보였다.


 



다시 발길을 돌려 성당 터로 향했다.

 

중세유럽의 화려한 대성당들에 비해선 분명 규모도 작은데다 대체로 골격만 남아 폐허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난 남프랑스 여행 중 만났던 감동적인 르 토로네 수도원이 생각났다. 절제된 텅 빈 공간에 꼭 필요한 만큼의 간결한 빛을 쏟아내는 대성당 제단의 창문과 분위기가 딱 르 토로네였다. 작은 빛으로 텅 빈 공간을 충만함으로 가득 채우는 이 오묘한 분위기는 혹시 시토회 수도사들이 아일랜드에 와서 이 성당을 건축한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St. Kevin 교회를 마지막으로 이 매력적인 수도원 도시를 뒤로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2개의 호수인 Lower LakeUpper Lake 사이를 트레킹 했다. 자작나무로 숲을 이룬 산책로에는 호숫물을 머금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렇게 약 30분 정도를 걷자 Upper Lake가 눈앞에 나타났다.

 

 

 

 

 

 

분명 호수라고 했는데 보고 있는 것은 협곡사이로 끝없이 펼쳐진 강이었다. 분명 착시일테지만 호수가 마치 강처럼 보이는 이 진기한 풍경에 발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일랜드 최초의 대주교인 St. Kevin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이 아름다운 호수를 감상하는 사이에 새들이 그의 손에 둥지를 틀었다는 전설이 전해져올 만큼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문득, 여행을 오기 전 보았던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시인인 월터 스콧의 글귀가 생각났다. 그는 글렌달록을 아일랜드의 고색창연함이 묻어나는,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진귀한 풍경'이라고 묘사하였는데 그의 말이 내 마음속에 와 닿는 시간이었다.   [손창용]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