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5. 1. 14. 06:00

 

여행을 아주 오래 한 후 귀국하면 으레 걸리는 병이 있다. 지난 여행이 마치 한 편의 꿈같이 느껴지면서 뭔가 허하고 이상하게 붕 떠있는 것 같은 상태, 장기여행 후유증이다.

 

지난해 10월까지 약 1년을 해외에서 보낸 후 한국 보행자 신호등이 원래 초록색이던가?’라는 황당한 질문을 해대던 나는 이 증상을 고스란히 겪고 있었다.

 

귀국 후엔 정말 쉴 틈이 없었다. 바쁜 일정에 비례하여 후유증은 더 심해졌다. 혼자만의 시간에 대한 갈증은 커져만 갔다. 하지만 다행히도 기회가 왔다. 테마세이투어 합격 후 정식 출근까지 약 10일간의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모처럼 여유가 생기니 당장 어디로든 혼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리고는 본능적으로 제주도가, 아니 섬이 떠올랐다. 육지에 있으면 무언가에 계속 얽매일 것 같았다. 그래서 모든 것에서 벗어나 훌훌 날아가려면 무조건 섬이어야 했다.

 

 

장소가 정해지니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하루 만에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약하고, '또 나가?'라는 언니의 핀잔을 뒤로하며 다음날 집을 나섰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 동안의 숙원이었던 백록담 등반을 제외하고는 정말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혼자 정리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한 셈이었다. 나는 제주에서 장기 여행을 마무리하고, 일상으로 복귀할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또한 출근에 앞서 마음가짐을 새로이 재정비하여 테마세이투어에 제정신(?)으로 참여하리라라는 나름의 임무도 가지고 있었다.

 

6번째 만난 제주도는 고맙게도 날씨가 쾌청했다. 덕분에 무사히 백록담 등반을 마쳤다. 하지만 생각보다 고된 산행으로 극심한 근육통이 복병이 되어 숙소에서 골골대고 말았다. 그 탓에 사색과 정리는 뒷전이요,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나는 숙제를 못 마친 학생처럼 초조했다. 하지만 내가 머물던 게스트하우스의 스탭으로부터 뜻밖의 힌트를 얻었다. 그 스탭은 20대 초반의 어린나이였지만 즐기며 성실히 일하는 모습이 참 예뻤다. 스스로의 만족감에서 오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에게까지 그대로 느껴져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 스탭의 모습은 내가 혼자 여행하다 잠시 잃어버린, 불과 몇 개월 전의 나였던 것이다.

 

사람은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 만족과 긍정성이 주변 사람에게까지 전이되는 효과가 있다. 이 스탭이 나에게 그러했듯, 마찬가지로 내가 일을 즐기며 진심을 다 한다면 처음엔 미숙할지라도 테마세이투어의 손님들께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한 번 깨달았던 사실을 다시 마주하고 나니 조급했던 마음이 가라앉으며 앞으로의 길이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여행의 마침표가 찍히고 새로운 스타트 라인에 선 것 같다. 근육통 때문에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지만 공항에서 다시 육지를 밟은 나의 발걸음은 오히려 한결 더 가벼워졌다. [방수윤]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