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5. 1. 20. 06:00

 

유럽의 어느 도시를 가든 광장문화가 존재한다. 광장은 그 도시의 역사가 응축된 현장이자 현재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러다보니 유럽의 도시에 대한 이미지는 광장분위기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에겐 시청까지 이어지는 광화문 광장이 있다. 최근에는 이곳에 분수도 설치되고 세종대왕상도 만들어졌으며, 철마다 예쁜 꽃으로 화단을 꾸미는 정성도 더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광화문 광장은 필수 방문 장소로 무척 인기 있는 곳이 되었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얼굴로서 기본 인프라는 어느 정도 구축된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멋진 광장에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광장엔 카푸치노 향도 풍기지 않고, 여유로운 시민들의 일상도 엿볼 수 없으며, 깊이 있는 문화행사 또한 찾을 길이 없다.

 

 

이따금씩 진행되는 시위는 차라리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광장의 원래 기능이 로마의 공공집회장소인 포럼에서 유래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연일 계속되는 행사들은 정말 짜증이 솟구치게 한다. 물론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되는 모든 행사는 문화행사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하지만 과연 이 행사들에 문화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는 것인지, 600년 도읍지의 격에 어울리기나 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안하지만 내 눈에는 광화문 광장의 행사들 중 태반이 조잡스럽게만 보인다. 게다가 행사마다 국제또는 세계라는 이름이 내걸리니 낯간지럽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같은 장소에서 두 개의 국제 음악 행사가 진행되었다. 경쟁이라도 하듯 꽝꽝 울리는 스피커 볼륨이 귀속을 파고들었지만 정작 관객은 두 행사 모두 50-60명에 불과했다. 국제행사라면서 진행순서를 보니 국내팀 7개에 동남아에서 온 팀 2개가 고작이었다.

 

주말엔 광화문과 시청광장에서 3개의 공연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모두가 K-pop 걸그룹의 춤과 노래다.

 

광화문 광장의 행사가 공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웬 음식축제가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팔도 음식제전, 국제 먹거리 전시회, xx한우 축제 등등. 자칫 이 행사들로 인해 수도 서울의 문화가 경박하고 수준 낮은 것으로 폄훼되어 인식되지는 않을까 무척이나 걱정된다.

 

백번 양보해서 이 넓은 공간을 각종 행사로 활용하고 있다고 치자. 하지만 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행사 전후의 광화문 광장이다. 각종 행사를 진행하기 위한 시설물 설치와 철거 공사가 계속 반복되다보니 광화문 광장은 연중 절반 이상이 공사중이다.

 

광화문 광장에는 행사만 있고 문화가 없다. 문화적이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낫다. 이순신장군과 세종대왕상 너머로 보이는 광화문과 북악산의 멋진 자태라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그게 더 문화적이지 않을까? [마경찬]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