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5. 4. 30. 06:00

 

 

다시 안데스 등줄기에 올라탔다. 볼리비아 티티카카호수에서 시작하여 우유니사막과 알티플라노 고원을 거쳐 칠레 아타카마사막을 관통했다. 그리고 파타고니아의 토레스 델 파이네와 피츠로이산을 트레킹한 후 땅끝 우수아이아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3년 전과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얀 소금으로 뒤덮인 우유니사막은 우기임에도 불구하고 바짝 말라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물이 차 있었다면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져 4차원적인 공간감각을 연출하는 신비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겠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지평선 끝까지 온통 하얀 순백의 세상에서 하나의 점이 되어 존재할 수 있었으니.

 

지프의 지붕에 올라 앉아 우유니 사막의 한복판에 떠 있는 섬 잉카후아시를 향하여 질주했다. 잉카후아시 섬은 경외감을 느낄 만큼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모든 생명을 덮어버린 하얀 소금평원 위에 마치 환영처럼 떠 있는 섬에는 천 년의 세월을 살아온 선인장들이 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듯 가시투성이의 몸뚱이를 창공으로 솟구치고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세상 어디에도 이와 비슷한 곳조차 존재하지 않는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우유니 사막 다음에는 알티플라노 고원이 이어졌다. 해발 4,000m에서 5,000m 사이를 오가는 안데스산맥의 정상에 펼쳐진 평원, 그곳엔 도저히 현실적이지 않은, 아니 상상의 세계에서도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뿌연 흙먼지를 날리며 고원을 질주했다. 파란 호수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빨간 호수도 등장했다. 그런가 하면 초록 호수도 나타나고 대지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지옥 같은 광경도 스쳐지나갔다. 극한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이 극단적인 아름다움 사이로 밑도 끝도 없는 쓸쓸함이 배어나와 이내 온몸을 휘감았다.

 

 

 

 

 

 

 

알티플라노 고원엔 절대고독이 살고 있었다. 텅 비어있는 공간에서 찾을 것은 없었다. 대지를 스치는 바람만이 끊임없이 비우라고, 버리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해발 4,600m의 호텔에 밤이 찾아왔다. 전기도 끊어져 세상이 깊은 어둠에 잠긴 시간에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텅 빈 공간을 걸어보았다. 완벽한 고요가 함께했다. 나는 어두운 대지에서 점차 하나의 작은 점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알티플라노에 가면 누구나 하나의 점으로 존재할 뿐, 그 이상의 존재감을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데스 여행을 떠나기 전, 만일 내가 죽기 전에 단 한곳만 여행할 수 있게 허락된다면 주저 없이 알티플라노 고원을 택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 생각엔 아직도 변함이 없다.

 

너무 아름다워서 쓸쓸할 수밖에 없는 곳, 내 몸에 달라붙은 온갖 상념들을 남김없이 토해내곤 의미 없는 한 점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곳, 알티플라노에서의 시간들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천국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마경찬]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