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5. 6. 4. 06:00

 

바다는 내 취향이 아니다. 휴양지 개념의 모래사장이 있는 바다라면 더욱 그렇다.

 

4개의 섬을 돌아보는 카나리아&마데이라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일정에 포함되어 있는 수많은 해변 때문에 혹시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내 걱정이 기우(杞憂)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카나리아의 해변들은 제각기 달라도 너무 달랐다.

 

화산재로 이루어진 테네리페의 검은 해변이 이색적인 신비감을 보여주었다면, 장장 70km에 이르는 새하얀 백사장이 옥색 물빛과 어우러진 푸에르테벤투라의 해변은 고요와 평화가 있는 낙원이었다. 만약 천국에 해변이 있다면 필경 이런 모습일 것이다.

 

반면에 섬 반대편으로 돌아가서 만난 라 파렛은 대서양 특유의 거친 파도가 맹렬한 기세로 절벽을 때려내는 스펙터클한 박진감으로 공포심을 자아냈다. 만약 지옥에 해변이 있다면 또한 이런 모습일 것이다. 천국과 지옥의 해변, 생김새와 느낌은 확연히 달라도 확실한 공통점은 있었다. 아름답다는 점이다.

 

 

 

 

 

 

푸에르테벤투라 섬의 북단에 있는 코랄레호 해변으로 접근하자 난데없이 거대한 사막이 나타났다. 흉흉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사구의 모습은 영락없이 사하라였다. 그랬다. 이곳에 형성된 사막은 바다 건너 아프리카의 사하라에서 날아온 모래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카나리아제도는 스페인령이지만 지리적으로는 아프리카 서부에 인접해 있다. 카나리아를 유럽인들이 점령하고 그들의 휴양지로 쓰고 있지만 아프리카는 수 세기 동안 모래를 날려 보내 이곳이 아프리카의 땅임을 항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반면에 섬 전체가 흉측하게 일그러진 용암으로 뒤덮여 있는 란사로테의 해변들은 극적인 반전의 연속이었다. 바다까지 침투한 용암덩어리에 분노한 듯 사납게 몰아치는 대서양의 파도가 해안절벽을 부수고 있는 로스 에르비데로스에서 격정의 순간을 맞이했다가, 엘 골포의 보석보다 아름다운 연두빛 호수 해안을 마주하고선 황홀함에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가도 소박하고 평화로운 어촌의 투박한 해안을 만나면 사람 사는 내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카나리아의 해변은 바다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줬다.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타히티나 카리브해의 바다에서도 큰 감흥이 없었던 나였지만 변화무쌍한 카나리아의 해변에서는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느꼈으니 말이다.

 

 

 

 

 

 

카나리아 제도가 섬들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바다가 이 여행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카나리아의 진짜 매력은 산에 있었다.

 

3,700m의 테이데 산 주변에 널부러진 수많은 칼데라 분화구들이 연출하는 광경이 경이로웠고, 란사로테 섬은 아이슬란드를 능가할 정도로 그야말로 화산 여행의 결정판이었다.

 

그리고 마데이라 섬, 피쿠 두 아르아이루에서 이루어진 3시간의 트레킹은 세계 최고의 명산 반열에 올려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지닌 곳이었다. 비교적 경사가 심한 악산임에도 불구하고 경관에 취한 우리 일행들의 발걸음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여행의 피날레를 장식한 상 로렌수 곶 트레킹은 지금껏 내가 걸어왔던 길 중에서 가장 행복하고 멋진 길이었다는 말 이외에 더 이상 보탤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이외에도 세사르 만리케의 자연과 조화된 작품세계를 둘러보거나 이따금 나타나는 예쁜 식민지 시대 마을들을 기웃거리는 일은 이 여행의 큰 보너스였다카나리아 & 마데이라, 여행꾼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해야겠다. 혼자 보기 너무 아까우니까. [마경찬]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