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5. 7. 31. 06:00

 

5월의 스페인 북부는 무지갯빛이었다. 이번 여행 이전까지 우리가 스페인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나라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각 지역의 서로 다른 모습들이 뚜렷한 저마다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 마치 다양한 색깔에 맞춘 여러 개의 이름이 필요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내 멋대로 이름을 바꿔 부를 순 없기에 그나마 나만의 색깔을 입혀보고 싶었다.

 

 

 

 

 

 

 

 

첫 번째 시작은 황갈색이었다. 여행 초반에 방문하는 친촌과 쿠엥카에서 황갈색의 느낌을 여지없이 받을 수 있었다. 오랜 목조건물들, 돌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는 골목골목사이를 누비다보면 수세기전의 그곳에서 내가 숨 쉬고 있는 것만 같았다.

 

 파란 하늘과 그 안에 끝없이 줄지어있는 구름들이 황갈색의 마을위에 둥둥 떠서 색의 대조를 이루고 있던 쿠엥카의 전망대는 그저 멍하니 서있기만 해도 좋았다.

 

800년 간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흔적이 뚜렷한 테루엘과 어스름 속에 필라르 성모 성당이 우뚝 서 있는 사라고사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서로를 견제하는 듯 노랑과 검정의 강렬한 대비 색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팜플로나와 산 세바스티안, 수안세스와 같은 곳들은 좀 더 선명한 색상에 비유할 만 했다. 팜플로나에서는 그 유명한 산 페르민 축제의 현장에 있지 않았더라도 거리 곳곳에 붙어있는 축제 벽보들과 상점마다 팔고 있는 붉은 스카프가 환희로 물든 빨간색 도시를 상상케 했다.

 

산 세바스티안에서 맛본 각양각색의 핀초스는 그야말로 일곱 빛깔 무지개를 입으로 먹는 경험을 선사했다.

 

 

 

 

 

 

 

생생함, 선명함에 정점을 찍은 것은 수안세스 바닷가에 흐드러지게 핀 선인장 꽃이었다. 눈부신 형광 분홍빛 꽃밭에 서있자니 고백하건데 그때만큼은 인솔자가 아닌 여행자로서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물론 어두운 색깔도 여행에 강약을 주는데 빠지지 않았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울적한 날씨가 분위기를 더한 탓일까. 게르니카는 잿빛 그 자체였다. 참혹한 역사를 간직한 도시가 내뿜는 고즈넉함은 들뜬 여행자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 만 했다.

 

드디어 산티아고에 다다랐을 때는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산티아고는 하나의 색깔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순례자들이 걸어온 길만큼이나 멀고 긴 흐름을 가진 그런 색이었다. 잿빛이지만 환희의 금빛으로 빛나는 압축된 어떤 것. 그것이 산티아고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대성당 안에 서서 종교를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도, 순식간에 온 세상을 뒤덮는 구름 속에 파묻혀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는 듯한 자연의 위대함도 느낄 수 있는 곳. 스페인 북부는 이렇게 내 팔레트에 담긴 수많은 색을 사용해 표현해야할 만큼 다양성을 가진 곳이었다. [박미나]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