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에겐 문학일 것이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번쯤은 접했을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사뮈엘 베케트, 조지 버나드 쇼, 세이머스 히니 같은 걸출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들이 모두 아일랜드 출신이니 충분히 그럴만하다.
아일랜드 여행에 앞서 바로 이 점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아일랜드 문학에 기대를 품고 오신 분들이 실망하는 것을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아일랜드 여행은 대개 영국 가는 길에 자이언트 코즈웨이와 더블린에 살짝 발을 디뎌 보는 게 고작이다. 그러니 더블린의 작가박물관 방문을 제외하고는 아일랜드 문학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고민은 막상 여행이 시작되자 아일랜드의 자연을 보느라 까마득히 잊혀졌다. 아일랜드의 자연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지만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약 4만 개의 주상절리로 형성된 자이언트 코즈웨이, 호수와 폐허 상태의 수도원 유적이 쓸쓸한 글렌달록, 아일랜드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린 호수를 끼고 있는 킬라니 국립공원, 케리 주(州)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일주도로인 링 오브 케리, 아일랜드의 하이라이트인 모허 절벽, 석회암이 끝없이 펼쳐진 버렌, 황량한 모습이 마치 스코틀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코네마라 국립공원, 제주도처럼 섬 전체가 돌담으로 둘러싸인 아란제도의 이니시모어 등….
변화무쌍한 날씨도 아일랜드의 자연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하는 한 가지 요소였다. 사람이 날아갈 듯 거센 비바람이 불다가 10분도 안돼서 맑게 갠 화창한 날씨로 변하는데 이것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다 보니 아일랜드의 날씨가 무엇인지 몸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자연 속을 가볍게 걷는 시간을 자주 갖다보니 왜 아일랜드에서 문학과 음악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지 저절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더불어 예전 아일랜드 문학에 기대를 품었던 손님들이 더블린을 떠나며 실망한 이유 또한 알게 되었다.
아일랜드 문학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유명 작가들의 물건을 모아놓은 작가 박물관을 갈게 아니라 그들이 숨 쉬고 살았던, 그리하여 그들 문학의 토대가 되었던 아일랜드의 자연 풍경을 봐야 하는 것이었다. [추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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