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5. 12. 29. 07:00

 

 

나는 원래 예술에 관한 한 문외한이었다. 문학 쪽에 약간의 관심은 갖고 살았지만 미술이나 음악 방면으로는 아예 몰상식하다고 할 정도다.

 

그렇지만 여행업을 하다 보니 일정에 삽입된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을 좋건 싫건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미술관 나들이를 반복하다보니 언제부턴가 그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미술관 가는 일이 은근히 기대되기도 한다.

 

하지만 솔직히 난 아직도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거나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림 그 자체보다는 화가의 삶에 얽힌 이야기 또는 그림이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 등등에 더욱 관심이 간다.

 

 

 

 

 

 

그런 나에게, 처음 접하는 순간부터 가슴 깊은 울림을 전해주었던 그림이 하나 있다. 아르메니아의 중년화가인 Endza의 작품이다.

 

코카서스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아르메니아는 설움의 나라. 온통 핍박과 억압으로 점철된 역사를 가진 아르메니아는 현재도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답답한 현실에 직면해 있어 음울하기 짝이 없는 색깔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아르메니아의 정신적, 종교적 수도 역할을 하는 곳이 예치미아진이라는 도시인데, 2년 전에 그곳의 아르메니아 자선 예술센터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실상 어린 학생들에게 아르메니아의 전통과 예술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작은 규모의 체험학습장과도 같은 곳이다. 그런데 우리가 들어간 식당 벽에는 온통 우울한 표정의 그림들이 가득 걸려있었다. 식당이 Endza의 갤러리를 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처음 만난 Endza의 그림들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가슴 깊이 애잔함으로 젖어들었다. 벽에 걸린 그림들을 돌아보다가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림 속의 그 아이는 너무나도 완벽하게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재현해내고 있었다. 삼선교 골목길의 문틈 사이, 아련한 기억 저편에 내가 서있었다.

 

지난 10, 2년 만에 아르메니아의 그곳을 다시 찾았다. 그리곤 식사준비를 마치자마자 황급히 Endza의 갤러리 식당에 들어가 보았다. 그 사이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타게 된 Endza의 그림들은 대부분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그림 속의 아이는 그 자리에서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원망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붙여오는 것 같았다. ‘왜 이제 왔어? 설마 잊고 산 것은 아니지?’라고.

 

지금 그 아이는 우리 집에 와있다. 처음 우리 집에 오던 날, 무슨 그림이냐고 물어오는 아내에게 어린 시절의 나를 찾아왔어라고 말해 주었다. 선뜻 이해하는 것 같아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우울한 눈빛이지만 희망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곤 그림이 놓일 자리를 찾아주었다.

 

요즘은 이 아이와 수시로 눈을 마주치며 살고 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 시절에 내가 보았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같은 것일까?’ [마경찬]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