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찬의 여행편지2016. 5. 2. 06:00

 

 

이게 정말 얼마 만에 가져보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벅찬 희열감일까? 카자흐스탄의 아씨 고원에 올라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목청껏 괴성을 지르고 말았다. 놀란 지프기사가 급정거를 했을 정도로.

 

그동안 참 많이도 보고 많이도 돌아다녔다. 좋은 것을 너무 많이 봐서 면역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었음인가? 이젠 어지간한 것을 봐도 좀처럼 흥분되지 않는다. 이런 일상이 적잖이 우울했던 차였다.

 

그런데 카자흐스탄의 아씨고원이 나른했던 정신을 일거에 깨우고 가슴에 다시금 불을 지피게 만들었다. 장엄하게 이어지는 천산산맥의 설산들을 배경으로 가슴 후련하게 펼쳐진 초원의 멋진 경관을 마주 하고 서는 순간부터 너무 감격스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아니, 한동안 정신이 나갔었나 보다. 초원 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맘껏 소리를 지르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동행한 콘스탄틴과 줄리아가 무척이나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중앙아시아 첫 팀 여행을 앞두고 사전 답사 차원에서 찾아간 카자흐스탄은 여러모로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재미도 없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회사 사장놀이에서 탈출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몸살을 앓던, 가슴 가득 뜨거움이 넘치던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으니 말이다.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서 새롭게 우리와 파트너십을 맺은 콘스탄틴과 줄리아 부부를 만났다. 카자흐스탄 오지여행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그들과 함께 지프차를 타고 4일간 거친 길을 달렸다. 알틴 에멜 국립공원, 차른 국립공원을 경유하여 아씨고원을 관통하는 동안 단 한사람의 여행자도 만나 볼 수 없었다.

 

다른 나라에 있다면 최고의 관광명소가 될 만한 곳들인데 왜 찾아오는 여행자가 보이지 않는 것인지 무척 궁금했는데, 그 답은 간단했다. 길도 엉망인데다 변변한 숙소도 식당도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관광에 관한 아무런 개념도 없이 그냥 방치된 상태였다. 난 그래서 더 좋았지만 단체로 이곳을 찾았을 경우를 가정해 보면 참으로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험난한 길은 차라리 여행의 맛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오프로드 주행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으니 굳이 피할 이유가 없다. 식당이 없는 것도 여행의 방해요소가 되지는 않는다. 테마세이투어 고객이라면 좋은 것을 보기 위해 며칠 정도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운다 해도 마다할 분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정작 제일 큰 문제는 숙소였다. 호텔 시설이 열악하다거나 불편하다는 문제가 아니다. 아예 숙소가 없다.

 

 

 

 

 

 

이처럼 멋진 곳에 호텔을 지으면 제법 돈도 많이 벌 터인데 왜 호텔을 짓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는데 쥴리아의 대답이 기가 막혔다.

 

세계에서 고위공무원의 부정부패가 가장 심한 곳이 카자흐스탄입니다. 장사가 잘되면 고위직 누군가에게 빼앗기는 게 일반적입니다. 내 친구도 알틴 에멜에 작은 호텔을 지었었는데 제법 장사가 잘됐어요. 1년쯤 지나니 고위직 한 명이 찾아와서 이 호텔을 팔라는 겁니다. 그것도 아주 헐값에. 제 친구는 안판다고 버티다가 결국 이런 저런 죄목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갔습니다. 호텔은 그대로 망했고요. 여기서는 아무도 새로운 것에 투자하려하지 않습니다.”

 

황당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호텔이 없어 찾는 사람이 없으니 얼마나 호젓한 여행을 즐길 수 있겠는가?’라고.

 

하룻밤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청한다. 그리고 또 하룻밤은 소비에트 시절에 지어놓은 요양원의 방을 빌려 쓰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아씨고원에서의 하룻밤은 과감하게 텐트를 치고 보내기로 했다. 아씨고원의 드넓은 초원위에 텐트를 치고 쏟아지는 별빛을 바라보며 지낼 하루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작은 흥분이 몰려온다. 지금은 누런 풀들이 다소 삭막해 보이지만 우리가 찾을 5월이 되면 초록의 초원엔 화려한 야생화들이 흐드러질 것이다. 그 순간 행복에 겨워할 우리 일행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마경찬]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