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6. 3. 2. 06:00

 

 

지난 9월 이탈리아를 끝으로 나의 여행은 지금 소강 상태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개월여 동안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살림에 관심이 많이 생겨났고 일단 집안일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요리, 평소 요리에 별 관심도 없고 시간도 없던 터라 주로 외식 혹은 반조리된 식품을 사먹기가 일쑤였는데, 요즘 TV만 틀면 등장하는 먹방, 쿡방의 영향으로 나도 덩달아 집밥 요리사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도전한 것은 인도요리. 지난 1월 인도여행 때 손님들의 향신료 쇼핑에 덩달아 하나 집어온 치킨 마살라 가루, 1년이 넘게 서랍에 처박혀 있던 것을 끄집어냈다. 현지 가이드가 유창한 한국말로 설명해준 레시피대로 충실히 이행했지만, 약간 요상한 비주얼의 치킨 티카 마살라가 탄생했다.

 

맛을 보니 나쁘진 않은데 썩 맛있다고도 못할 정도. 남편은 그냥 너는 요리를 안하는 것이 낫겠다고 혹평이다. 결과에 승복할 수 없어 회사에 가지고 와서 인도 음식에 익숙한 동기에게 선을 보이니 맛은 이국적이나 쓴 맛이 나며 또 생각날만한 맛은 아니라고 냉정한 평가를 남겼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그 이후로도 토마토 스프, 티라미수 등을 만들어보며 여행 다닐 때 먹었던 그 음식들의 기억을 되살려보고 있다. 주위 친구들에 비해 다소 일찍 여행을 시작한터라 외국 문물 특히 음식들을 빨리 받아들인 편이다.

 

탄산수를 접해보지 않은 친구들 앞에서 탄산수 사랑으로 허세녀로 등극했었으며, 계란에 감자와 토마토를 같이 볶아낸 것에 스페인식 오믈렛 토르티야라고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남은 야채에 토마토, 검은 올리브, 통조림 참치에 발사믹과 올리브유를 대충 뿌려놓고 니수아즈 샐러드라고 짐짓 있는 척을 하곤 했다.

 

 

 

 

 

 

실제로 출장길에 사가지고 온 다양한 식재료들이 동원되기 때문인지 친구들은 그냥 일반 샐러드를 맛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양 신기해하고는 했다.

 

재미삼아 새로운 음식 문화를 선보이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먹고 살려고 음식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생존의 문제였다. 장을 보고 재료 준비를 하고, 밥을 먹은 뒤 설거지에 주방 정리까지 달랑 두 사람이 밥 한번 먹는데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주로 주말에만 밥을 해먹는데도 불구하고 이 지경이라니. 엄마가 아무렇지도 않게 뚝딱뚝딱 만들어주시던 집밥이 정말 위대하게 느껴졌다. 초보 집밥 요리사는 4개월 만에 벌써 요리에 흥미를 잃고 남이 해준 밥을 그리워하고 있다. 아무래도 출장을 가야할 시기가 다시 온 듯하다. [이은정]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