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2016. 3. 31. 08:00

 

 

나는 게으른 여행자다. 여행의 하루는 대부분 느긋하게 시작하는 편이다.

 

이러한 게으름뱅이에게 일출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테마세이 인솔자가 아니었다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일출도, 미얀마 바간의 일출도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저 장엄한 유적들이 인간들의 스마트폰 셔터 소리에 깨어나는 듯한 그 신비로움, “힘들긴 해도 부지런 떨길 잘했네라는 생각이 절로 들곤 했었다.

 

 

 

 

 

 

 

대신에 일몰보기는 아주 자신이 있다. 매일 뜨고 지는 해 보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 싶지만, 붉은 기운을 더해가며 서서히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무척 여운이 긴 것은 물론 그 시간과 장소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하기도 한다.

 

생경한 자연, 멋진 유적지와 어우러지는 일출과 일몰의 풍경은 그 자체로서도 아름답지만, 역시 그 고즈넉한 분위기가 필수조건인 것 같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아무런 방해 없이 태양과 내가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다녀온 미얀마 바간 역시 장엄한 일출과 일몰로 유명한 곳이다. 그 천불천탑이 깨어나는 일출의 순간과 서서히 사라져가는 일몰의 순간은 정말 압도적이다. 하지만 결코 고즈넉한 곳은 아니다. 늘 몰려드는 여행자들 때문에 앉아서 여유롭게 즐기기는커녕 까치발을 들고 사람들 머리를 헤치고 사진을 찍느라 진이 다 빠질 지경인 곳이다.

 

 

 

 

 

 

하지만 이 마저도 못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일몰일출을 위해 바간의 파고다에 오르는 일이 31일부터 전면 금지됐기 때문이다. 신성한 파고다에 부적절한 옷차림으로 오르거나 심지어는 춤을 추고 잠까지 자는 사람이 있다는 게 그 이유다. 다행히 전면 금지령은 며칠 만에 가장 높은 5개 탑에 한해 입장이 허락되는 것으로 수정됐다.

 

언제 또 미얀마 정부가 변덕을 부릴지 모르지만 일단은 다행이다. 5개 탑으로 한정되면서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의 일출과 일몰은 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그럼에도 우리의 바간에서의 일출과 일몰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번잡함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봐야할 가치가 있는 일출과 일몰도 있는 법이다. 바간이 바로 그런 곳이다. [이은정]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