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6. 3. 21. 06:00

 

 

실론은 스리랑카의 옛 국명이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홍차의 이름인 실론티는 다시 말해 스리랑카의 차인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좋은 향이 나는 것만 같은 실론티, 그리고 그 실론티가 자라는 스리랑카 중부의 고산지대인 누와라엘리야와 하푸탈레. 나는 그곳에서 실론티에는 질 좋은 푸른 찻잎 외에도 향긋함과 쌉쌀함을 더하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의 중반부,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누와라엘리야의 차밭 언덕을 굽이굽이 오르고 있었다. 차창 밖 길가에 조금은 튀는 듯한 색깔의 옷을 입고 서있는 몇몇 아이들이 보였다. 처음엔 그저 모여 놀고 있는 동네 아이들 정도로만 생각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조금 후, 눈에 띄는 형광분홍색 바지를 입었던 소년이 창밖으로 또다시 보였다. ‘? 아까 그 소년인가?’ 사정을 모르니 단번에 눈치 챌 수 없었다. 분명 우리는 버스로 언덕길을 돌아서 올라왔는데 걸어온 아이가 어떻게 벌써 여기까지 와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현지가이드인 미스터 날린이 설명을 시작했다. 이 아이들은 언덕 밑에 모여 있다가 관광객들이 탄 것으로 보이는 버스가 지나가면 목표물로 정한다고 한다. 그리고는 목표로 정한 버스가 갈 지()자로 길을 천천히 돌아 오르는 동안 가파른 언덕을 직선으로 가로질러 원숭이처럼 기어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버스가 길을 돌아 오르는 내내 이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관광객들 눈에 띄어 꽃을 팔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형광분홍색 바지를 입은 소년도 그래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굽은 길을 한두 번 올라갔을 때는 저러다 말겠지 했다. 헌데 그 모습이 반복되자 안쓰러워 다음 커브를 돌아서도 또 와있으면 차를 멈추기로 했다.

 

그런데 하필 바로 다음 커브길 까지는 꽤나 거리가 멀었다. 경사도 이전보다 훨씬 더 가팔랐다. 일행 모두들 이번에는 못 올라 왔겠지 하며 그냥 보낸 미안한 마음에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눈앞에 형광분홍색 바지가 반짝였다.

 

버스 안에서는 감탄사가 새어나왔다. 어서 차를 멈추고는 소년을 불렀고, 손님들은 소년의 손에 간식과 돈을 쥐어주셨다.

 

여행을 하다보면 여행자들에게 꽃, 팔찌 등을 팔려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지난 1월 스리랑카에서의 경험은 참 특별했다. 단순히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강매나 구걸이 아닌, 여행 중 만난 또 다른 감동이었기 때문이다.

 

누와라엘리야와 하푸탈레는 스리랑카 내에서도 소수로 차별받는 인도 타밀족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차를 따는 여인들도 모두 타밀여인들이고, 이 아이들은 물론 그들의 자식들일 것이다.

 

지금 사무실에 앉아 글을 쓰면서 한 모금씩 마시는 실론티에는 타밀여인들의 노동과 아이들이 언덕을 오르며 흘린 땀과 눈물이 서려있어 이렇듯 더욱 풍부한 삶의 향기와 쌉쌀함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미나]

 

 

 

 

Posted by 테마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