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러시아로 휴가를 다녀왔다. 결론은 어땠을까? 거의 매일 눈이 왔고, 분명 한국보다 더 추웠지만 한 마디로 말하자면 ‘달콤한 겨울 꿈’이었다.
8박9일 전 일정을 모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투자하였음에도,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이 도시에 며칠 더 머무는 것은 물론, 시베리아 열차까지 탔을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놀란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러시아에 대한 우리의 무지다. 여행을 준비하며 보니 한국에 러시아 가이드북이 단 한 권뿐이었다. 러시아는 차가운 시베리아 동토만큼이나 자료수준이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두 번째는 볼거리다. 내가 들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서울 면적의 2배가 넘는 거대 도시다. 9일을 이 도시에만 있었는데도 볼거리는 넘치고도 넘쳤다.
세 번째는 예술이다. 나는 발레에는 흥미가 없다. 그래서 발레로 유명한 러시아지만 발레를 보지 말까 생각했다. 그랬다면 크게 후회할 뻔 했다. 일상을 탈출한 환상공간을 보여주는 마린스키 극장, 파스텔 톤의 아름다운 무대의상, 나 같은 막귀도 사로잡는 음향 등, 아! 마린스키의 유일한 동양인 발레리노 김기민의 활약도 빼 놓을 수 없다.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지 인형’ 무대는 수준이 높으면 문외한도 감동시킬 수 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회화의 경우 ‘이 작품이 러시아에 있었어?’ 싶은 명작들이 숨바꼭질 하듯 나를 놀라게 했고, 몰랐던 러시아 대가(大家)들의 작품과 부활절 달걀 공예로 그 수준이 잘 알려져 있는 공예 예술품들도 나를 줄곧 즐겁게 했다.
그렇게 러시아에 빠져 버렸기 때문에 귀국 후 당장 우리 여행사의 러시아 여행 일정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9박10일 중 절반이 러시아의 문화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일정이었고, 이곳에서만큼은 내가 딱히 ‘여기는 빼면 안 되는데…’ 싶은 곳이 없었다.
특히 파블로프스크 궁전이 그랬다. 이곳은 호박방으로 유명한 예카테리나 궁전보다 보존상태가 훌륭하지만, 한국인 및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꽤 멋진 ‘발견’을 했다고 생각하고 회사에 보고할 생각이었는데 이미 방문하고 있어서 뿌듯했다.
‘더 있고 싶어요.‘라며 찡찡거리는 나에게 숙소 주인 분은 ’다음에 또 와. 다음에. 그때는 여름에 와. 여름에는 훨씬 좋단다.‘ 라며 토닥여 주었다.
백야와 햇살로 반짝이는 러시아의 여름날은 겨울과는 또 얼마나 다른 찬란한 아름다움을 보여줄까…? [구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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