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 리포트2016. 9. 1. 06:00

 


이름도 생소한 발틱
3국을 다녀왔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에서 9일 동안 친절한 사람들, 화려하진 않지만 잘 보존되어 있는 중세시대의 건축물, 가톨릭과 루터교, 유대교, 그리고 러시아 정교회까지 공존을 이루고 있는 여러 종교문화를 여유롭게 경험해볼 수 있었다.

 

그 뿐이랴, 호수 위에 떠있는 듯한 그림 같은 트라카이 성과 신선놀음하듯 유람하던 갈베 호수의 요트투어, 가족의 안녕을 바라며 십자가를 직접 꽂았던 샤울레이 십자가 언덕, 햇빛 찬란한 파르누의 해변은 여행에 다양성을 불어 넣어 주었다.

 

인솔자인 나 역시도 낯설었던 발틱 3국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한 장소가 기억에 남는다. 바로 빌니우스 시내에 있는 리투아니아 제노사이드 박물관이다. 흔히들 ‘KGB 박물관이라 부르는데, 실제로 과거 한때 KGB 건물로 쓰이던 곳이다.

 


 




우리 세대에겐
‘KGB’라고 하면 마트에서 파는 달콤하고 도수 낮은 보드카가 먼저 연상되지만, 조금만 더 눈을 과거로 돌려보면 악명 높은 구소련의 정보기관이 떠오른다.

 

우리 일행은 화창한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박물관 지하로 내려갔다. 음산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어두운 복도 양옆엔 도청실, 고문실, 감옥이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수감자들이 입었던 낡은 죄수복과 옴짝달싹 할 수 없이 어둠 속에서 서있어야 했던 암실, 처형실 벽에 나있는 총탄 자국 등을 보며 KGB의 잔혹함에 모두들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박물관 뒤편은 수감자들이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사면이 벽으로 막혀있어 고개를 들어야만 볼 수 있었을 네모진 하늘은 그 옛날에도 그저 무심하게 푸르렀을 것이다. 위로 올라가니 리투아니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다 잡힌 사람들의 옷과 무기, 유품들이 있었으며, 시베리아로 강제 추방된 자들에 대한 기록과 그곳에서 사망한 이들을 위한 기념비도 있었다.

 

! 서대문 형무소도 가보지 않았는데 여기서 이걸 다보네.” 한 손님의 작은 탄성에 묵묵히 사진을 찍던 나에게도 서글픈 감정이 밀려왔다. 전시를 보는 내내 일제 강점기에 유사한 고통을 겪은 우리의 역사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박물관을 나오니 야외엔 리투아니아 초등학생들이 그린 그림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역사와 희생당한 사람들의 한이 담겨져 있었다. 동방의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누구보다 이 그림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그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사실 리투아니아는 발틱3국 중 제일 소박했다. 하지만 이 차분한 분위기의 나라에 개인적으로는 제일 정이 갔다. 아마도 같은 아픔을 공유한 동병상련의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임윤진]



 

Posted by 테마세이